건축과 공간으로 삶의 연장선을 설계하다
상명대학교 디자인대학 스페이스디자인전공 양성욱 학생은 최근 첫 사진전인 「언젠가 우리가 세웠던 것들」을 통해 우리가 살기 위해 이 땅 위에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올려 지은 집과 그 집에서 내리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이야기하고, 아들과 딸을 키워온 우리의 삶을 생각하게 했다. 또 대학이 밀집된 곳으로 유명한 충남 천안시 안서동에 있는 천호지를 중심으로 혁신적인 공간디자인을 제안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의 눈으로 본 건축과 공간에 대한 생각을 통해 나와 우리의 삶과 함께 공간의 의미를 돌아보고자 한다. 1. 간단한 자기소개와 상명대 입학 후 수상이력이나 보유중인 자격증 소개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지난 3월 24일부터 29일까지 상명대 디자인관 갤러리에서 선보인 사진전 『언젠가 우리가 세웠던 것들』의 작가인 상명대 디자인대학 스페이스디자인전공 4학년 양성욱(20학번, 24세)입니다. 2020년 3월에 상명대학교를 입학해서 2022년 12월 공간디자인대전 우수상, 2023년 8월 한국인테리어디자인대전 특선, 2023년 10월 GH공간복지청년설계공모전 장려상, 2023년 12월 SH반지하활용방안아이디어공모전 은상, 한국비주얼머천다이징협회디자인공모전 특선, 천안시 지역개발공공디자인연구 시장 표창, 2024년 10월 진주시 공공디자인공모전 은상, 2025년 2월 정림 디지털아카데미 렌더링 우수상, 정림 디지털아카데미 모듈러 프로젝트 우수상 수상의 수상실적이 있습니다. 또 2024년 12월에 건축기사 자격을 취득했습니다. 2. 전공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고, 상명대 디자인대학 스페이스디자인전공의 분위기는 어떠한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에 사로잡혔던 고교 시절 어느날, 부모님 서재에서 우연히 조선시대 – 구한말의 건축과 생활상을 담은 사진첩을 보고 묘햔 향수와 고양감을 느꼈습니다. 나는 이 땅에 앞으로 무엇을 남길 것인지, 나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를 꾸준히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건축과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은 이 땅 위에 무엇을 어떻게 남길 것인지 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스페이스디자인전공을 선택했습니다. 상명대학교 스페이스디자인전공은 열정이 넘치는 전공으로 학생들의 사소한 질문도 가벼이 생각하지 않고 함께 고민해주시는 교수진과 연구할 수 있는 분위기가 정착되어 있습니다. 또한 학년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분위기가 있어 각종 국내외 공모전과 대회에서 많은 수상의 성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3. 상명대 입학 후 화려한 수상 이력을 갖고 있는데, 기억에 남는 수상이 있다면 어떤 것이고 이유는 무엇인가. 공모전은 실력 외에도 성실성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으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출품하고자 노력했습니다. 2학년 때 공간디자인대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이후 다양한 건축, 공간 디자인 공모전에 출품하였습니다. 그 중에 2023년 여름에 참여했던 제1회 GH공간복지청년공모전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처음으로 수상한 건축 공모전이기도 했고, 여름방학에도 학교에서 밤을 새워가며 준비한 공모전이기 때문에 특별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4. 스페이스디자인전공에서 건축기사 자격을 소재한다는 것이 생소하다. 건축학과 학생도 졸 업 전에 취득하기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는데, 건축기사 자격에 도전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건축기사는 저에게 있어 큰 도전이었습니다. 저희 전공은 보통 실내건축기사를 취득하는데, 저는 건축가가 되겠다는 꿈이 있어 건축기사에 도전했습니다. 건축가가 되려면 건축사 자격을 취득해야 하기 때문에 우선 건축기사를 취득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고, 운 좋게 필기와 실기시험에 연달아 합격해 목표한 기간 내에 취득할 수 있었습니다. 5. 상명대학교 스페이스디자인전공은 2023년도부터 천안시 지역개발 공공디자인사업에 협력하고 있다. 양성욱 학생도 사시옷팀으로 첫해 참여해 안서동 천호지를 중심으로 한 도시 수변 공원 공간 개선을 제안했다. 제안한 내용은 무엇인가 안서동은 천호지를 중심으로 5개 대학, 약 5만 명의 인구가 상주하는 곳입니다. 천호지는 거대한 수변 공원이지만, 오히려 그 크기와 수공간이라는 점 때문에 대학 간의 고립과 단절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천호지가 단순히 외곽을 따라 걷는 ‘일방향 공간’에 머물지 않고, 청년들을 모으고 ‘머물 수 있는 장소’로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위해 팀원들과 여러 번의 사이트 답사와 다방면의 분석을 진행하였고, 다음과 같은 마스터플랜을 제안했습니다. 먼저 안서동과 천호지의 연결을 강화하기 위해 그사이를 흐르는 상암천의 수변 공원화를 제안했습니다. 다음으로 청년들이 천호지에서 새로운 도전과 실험을 촉진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이를 위해 청년기숙사 ‘안서 연방’과 ‘안서 작은 도서관’을 제안했습니다. 다음으로 인근 고속도로와의 직접 연계를 위해 ‘안서 EX-HUB’와 ‘이음육교’를 제안했습니다. 천호지를 청년들이 모이고 연결되는 열린 쉼터로 탈바꿈하는 마스터플랜은 천안시장님을 비롯한 시청 관계자들께 결과발표하고, 시청로비에서 전시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6. 올해 학부생으로는 처음으로 상명대학교 디자인관 갤러리에서 전통 건축을 기록한 첫 사진전을 단독으로 개최했다. 사진전을 개최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3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한 저는 그해 여름, 오랫동안 꿈꿔왔던 목조 건축 순례를 떠났습니다. 한 달 간 한국 중남부 지방과 일본 관서 지방의 전통 건축을 답사하며 사진에 담았습니다. 이때 촬영한 사진을 활용할 방법을 생각하던 도중, 뉴스에서 경복궁 낙서 테러, 병산서원 못질 훼손 사건 등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또 산업화가 시작된 지 반세기 만에 국토가 천편일률적인 콘크리트 박스에 뒤덮이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전통 건축에 대한 관심과 애정의 결여가 우리가 세웠던 것들을 의도적으로 파괴하고 훼손하며 역사성을 해하는 것으로 이어진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대로 간다면 우리가 세웠던 것들 것 모두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들었습니다. 결국 전통 건축 순례에서 촬영한 사진을 단순한 기록을 넘어 전통 건축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위한 사진전을 열기로 했습니다. 7. 이번 개최한 첫 전통사진 개인전에 대해 간단한 설명 부탁한다 이번 사진전 『언젠가 우리가 세웠던 것들』은 전통 건축을 매개로 이 땅에 뿌리내리고 살아온 ‘이 땅 위의 우리’와 ‘현재의 우리’ 사이의 연결성을 돌아보는 전시입니다. ‘우리가 세웠던 것들’은 우리의 삶이 조상들이 살아왔던 삶의 연장선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전통 건축을 통해 이 땅과 연결되는 경험은 ‘나’에서 ‘우리’로, 나아가 ‘이 땅 위의 우리’까지 확장되는 여정입니다. 전시를 본격적으로 준비하면서 처음 선정한 500여 장의 작품을 가다듬고, 덜어내며 다시 선택하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여 100여 장의 사진을 선정했습니다. 그리고 전통건축을 木(목), 瓦(와), 雪(설), 色(색), 影(영) 다섯 가지 아름다움으로 분류하여 전시했습니다. ‘우리가 세웠던 것들’이 무척이나 사랑스러워 보이는 까닭은, 우리의 삶이 조상들이 살아온 수천 년의 시간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임을 여러분께 전하고 싶었던 첫 개인전을 상명대학교에서 전시한다면 더욱 의미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전시 계획서를 작성해 교수님과 상의한 결과, 감사하게도 학부생 최초로 디자인관 갤러리에서 전시할 수 있었습니다. 8. 많은 고민과 도전으로 건축과 공간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된다. 본인이 생각하는 건축과 공간은 무엇인가? 우리는 땅을 잠시 빌려 살아가는 존재일 뿐, 그 무엇도 가져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우리가 남겨준 이 땅 위에서 주어진 시간을 살고, 결국 모든 것을 미래의 ‘우리’에게 다시 돌려주게 됩니다. 따라서 건축과 공간은 과거의 우리가 이 땅에 세웠던 것들을 계승하고 이해한 결과여야 하며, 현재의 삶을 담되, 미래의 삶도 담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과거의 우리에 대한 존경이자 미래의 우리에 대한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9. 대학 생활을 알차고 멋지게 만들어가고 있는 양성욱 학생의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앞으로의 계획과 꿈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4학년은 대학 생활의 마지막이자 학창 시절의 마지막인 만큼 ‘열심히 그리고 되도록 즐겁게’ 보내는 것이 올해 목표입니다. 우선 눈앞에 과제인 졸업 작품에 최선을 다하고 여름방학 전에 졸업 작품을 마무리한다면 사진전을 한 번 더 열고 싶습니다. 첫 사진전에서 보여드리지 못한 일본의 전통 건축이과 우리나라 전통 건축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전시를 열고 싶습니다. 제 꿈은 과거의 소중한 가치를 계승하여 미래의 우리에게 남겨줄 수 있는 건축가가 되는 것입니다. 건축과 디자인을 통해 우리 전통 건축을 은유적으로 알리고 발전시켜 나가는 현대전인 건축을 해보고 싶습니다. 10. 꿈을 향한 도전을 시작하는 또 시작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부탁한다. ‘나’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탐구하시길 바랍니다. 저는 1학년 때 학교생활에 큰 흥미가 없었고, 학점도 썩 좋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나’에 대한 탐구는 멈춘 적이 없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좋아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보내셨으면 합니다. 또 하고는 싶은데 준비가 부족하거나 자신에게 너무 어려운 도전이라는 생각이 들어도, 주저 말고 일단 도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무쇠도 갈면 바늘이 된다는 말이 있듯이, 끊임없는 도전이 우리를 더욱 예리하고 가치 있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라는 말을 마지막을 인터뷰를 마쳤다. 양성욱 학생의 건축과 공간에 대한 관심과 도전의 모습은 좋아하는 것이 명확하고 즐기듯 도전하는 MZ세대의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심있는 것에 대한 많은 관찰과 고민 그리고 직접 마주하며 도전을 멈추지않는 양성욱 학생에게서 상명대학교의 밝은 미래를 엿볼수 있었다. 상명대학교는 양성욱 학생의 끊임없는 도전을 응원한다!
‘아만자 박배우’에게 ‘꿈’을 물어보았다
“OO씨 꿈은 뭐에요?” 2025년 첫 상명피플이다. 학생홍보단 인터뷰 자료를 편집했던 게 어제 같은데, 어느새 캠퍼스에 새로 들어온 이들을 맞이하고, 정든 캠퍼스를 떠난 이들을 응원하며 못 다 끝낸 일을 마무리하고 있다. 신입생들은 지금 어떤 기분일까. 나의 20살 때를 복기해 보면, 3월 첫 캠퍼스 라이프에 매일 신나있었다. ‘대학 가면 애인 생겨!’라며 고3 때 담임의 말을 철석같이 믿은 채로 말이지. 그게 거짓말이란걸 알았을 때 나는 졸업반이었다. 장밋빛 같은 청춘? 군대 갔다 오고 취업 준비생이 되니 그런 건 없었다. ‘나는 뭘 하면서 살아야 하지?’란 막막함 때문이었다. 꿈이 없었단 게 맞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새 학년 첫 출발부터 이런 칙칙하고 암울한 이야기라니, 혹시라도 이번 호가 푸릇푸릇하길 기대했던 분이 있다면 진심으로 사과하겠다. 그러나 어두운 밤도 빛을 밝히면 별빛이 수놓아 진단 걸 알아주길 바란다. 박선정이라는 배우를 아는가? 대학로 연극 혹은 드라마 단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소위 말하는 ‘무명 배우’이다. 대부분 처음 듣는 이름일지 모른다. 어릴 적부터 꿈꿔온 배우라는 직업에 큰 애착을 가진 그녀는 더 넓은 세상을 위해 본교 문화기술대학원 공연예술경영학과 석사 및 글로벌문화콘텐츠전공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열정을 가지고 본업을 위해 힘써오던 그녀에게, 세상은 참으로 무심하다는 걸 깨닫게 된 일이 생긴다. 암 선고. 일상의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암초가 나타났다. 절망도 사치스러운 일 앞에서도 그녀는 멈춰설 수 없었다. 배우라는 직업을 사랑하기 때문에, 본인의 삶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는 건강한 삶을 되찾기 위해 달렸다. 아픔을 딛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는 그녀의 삶은 지금 새로운 2막을 앞두고 있다. 시련을 이겨내고 여전히 꿈을 살아가는 어느 배우의 이야기, 이번 상명피플의 주인공은 박선정 배우다. 팝콘을 가져와도, 콜라를 가져와도, 그냥 빈손으로 와도 좋다. 이 이야기가 당신에게 울림이 되길 바라며, 올해 마수걸이 상영을 시작하겠다. 그렇게 ‘아만자 박배우’에게 ‘꿈’을 물어보았다. Q: 안녕하세요. 상명대학교 커뮤니케이션팀입니다. 이번 상명피플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 시작에 앞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박선정 동문(이하 ‘박선정’): 안녕하세요. 저는 연기하는 배우 박선정이라고 합니다. 85년생, 벌써 41살이 되었네요. 상명과의 인연은 공연예술경영학과 석사, 글로벌문화콘텐츠전공 박사 과정을 통해서 이어지게 되었는데요. 오늘 인터뷰까지 하게 되어 무척 반갑습니다. Q: 잘 부탁드립니다. 그동안 여러 촬영 문의 차 연락을 주고 받았었고, 이제는 인터뷰로 직접 뵈니 저도 감회가 굉장히 새롭습니다. 특히 배우로 활동하신 만큼 뭐랄까, 연예인을 실제로 보고 있으니 약간 긴장되네요. 그럼에도 오늘 좋은 인터뷰 만들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박선정: 네 잘 부탁드립니다. Q: 그럼 첫 번째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처음 소개해주신 것처럼 ‘연기하는 배우’라고 하셨는데, 많은 분들에게 배우란 직업은 일종의 선망의 대상이라 할까요? 어떤 이들은 배우를 동경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배우를 꿈꾸고 있고, 또 누군가는 배우는 어떻게 되는걸까란 생각을 가지고 있을텐데요, 동문님은 어떻게 배우의 길을 걷게 되셨나요? 박선정: 어릴 때부터 TV에 나오는게 제 꿈이었어요. 유치원 다닐 때도 친구들한테 “내가 ’TV는 사랑을 싣고‘에 나와서 찾아줄게!”라 외치고 다닐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재미있는 배우가 되자란 생각이 자연스럽게 이 길로 이끈 것 같아요. Q: 어떻게 보면 배우란 꿈이 인생의 동반자같은 느낌이네요. 박선정: 맞아요. 특히 고3 때 그런 걸 많이 깨달았어요. 한창 대입 준비하면서 ’난 무슨 과를 가야하지?‘ 고민하는 친구들이 많았었는데, 저는 연극영화과를 갈거라고 계속 다짐했기에 그런 고민이 낯설게 느껴졌어요. 한 가지 꿈이 있는 경우가 많지 않구나, 고민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구나 배웠어요. 물론 저도 배우 생활을 하면서 무명이었던 기간이 정말 길었고, 여러 어려움도 많았지만 그래도 꿈이 명확했고, 지금도 그 꿈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배우란 직업이 저에게 정말 소중한 존재가 아닐까 생각해요. Q: 배우의 꿈을 꾸면서, 또 배우의 삶을 살아가면서 정말 많은 감정을 느끼시지 않았을까 싶네요. 박선정: 음 슬픈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아직까지도 저는 무명 배우에 가깝다 생각해요. 예를 들어 정말 많은 직업군이 있잖아요. 나를 소개할 때 예를 들어 “저는 의사 OOO입니다.” 혹은 “제 직업은 교사입니다.” 이런 식으로 할 수 있을텐데, 저는 “배우 박선정입니다.” 라고 말하면 어떤 분은 “드라마나 영화, 연극에서 본 적도 없는데 배우에요?”라 말을 하실 정도니까요. 사실 유명 배우와 무명 배우의 생활은 정말 달라요. 우리가 흔히 이름 대면 아는 배우들은 유명 작품에 캐스팅되기도 하고, 광고나 이런 것들도 많이 찍을 기회가 오고 하는데, 저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조금 멀었죠. 대학도 삼수 끝에 들어갔고요. 그 이후에도 대학로에서 연극을 계속 해왔지만 유명세를 얻지 못해서 자존감도 떨어지고, 힘든 시간이 꽤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연극 무대에서 연기를 하고, 막이 내릴 때 관객들의 박수를 받을 때 느끼는 감정에 아직도 벅찹니다. 그래서 그 행복함을 가지고 지금까지 배우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배우들은 대사를 숙지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 정년이라고 하는데, 저는 정년 없이 마지막까지 연기를 하고 싶습니다. Q: 이야기를 들으니 정말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애착이라든가 프라이드가 정말 남다르다는 게 느껴지네요. 아무리 무명 배우라 할지라도 내가 내 일을 사랑하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하셨던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좀 드는데요. 좀 더 나아가서 이 열정이 배우라는 직업, 여기서 좀 더 나아가면 문화에 대한 거에 대한 열정으로 발전되어서 학업을 더 이어나가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석박사를 진학하게 된 이유, 그리고 그 상명대를 진학하게 된 이유도 들어볼 수 있을까요? 박선정: 사실 고등학교 3학년 정시 때 상명대학교 연극과에 지원을 했었어요. 근데 안타깝게도 떨어졌어요. 상명과의 첫 인연은 불합격이었네요. 그렇게 삼수 끝에 연극영화과에 진학하고, 또 대학로에서 연극하면서 학업을 이어갔었는데요. 대학로 가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혜화역 1번 출구에 가보면 상명대 예술디자인센터가 있어요. 대학로 연극의 중심지에 딱 위치해 있으니 자연스럽게 눈길이 가더라고요. 그렇게 서른살이 되니까, 연기에 대해 조금 더 공부를 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제가 대학 생활을 조금 늦게 시작한 것도 있고, 극단 생활을 10년 가까이 해오다 보니 좀 더 다양한 연극, 내가 해보고 싶은 연극에 대한 갈망이 생겼어요. 지금까지는 누군가가 만든 연극의 배우로 활동했다면, 이제는 내가 만든 연극을 직접 해보고 싶어져서 상명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에 공연예술경영전공으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하게도 합격을 했고, 그러면서 새로운 목표를 세우게 되었어요. 관심있으신 분들은 알겠지만, 극단이나 무용단 같은 예술가 집단에 본인의 이름을 건 것들이 있잖아요? 비록 제가 무명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내 이름을 건 극단 하나는 만들어보고 싶다 생각이 들어서 ’극단 박선정‘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 극단에서 졸업 공연과 함께 저를 메인으로 한 모노 드라마도 한 편 제작했었습니다. 그렇게 극단 활동도 하고 또 학업을 이어가다가 박광수 작가님의 만화 ’광수생각‘ 10주년 공연을 제작하게 될 기회가 왔어요. 예전 삼수생 시절에 광수생각 스텝을 했던 적이 있는데 정말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라 느꼈거든요. 그런데 또 좋은 인연이 닿아 제작과 출연까지 하게 된 기억이 있습니다. 석사 시절은 그렇게 보내며 공연예술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를 하다, 2020년 코로나가 터졌죠. 무관객 공연도 두 번이나 있었고, 소상공인분들이나 여러 직업군이 모두 힘들었지만 문화예술계 역시 정말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 나 이제 어떻게 살아야하지?‘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난 이 길만 보고 살았는데, 약간 벼랑 끝으로 내몰린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순 없잖아요?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코로나 시기에 OTT 이용률이 정말 많이 올랐단 걸 알았어요.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해졌고, 이제는 이 부분을 더 공부할 필요가 있겠다 느꼈습니다. 마침 학교에 글로벌문화콘텐츠전공이 있어 대학원 과정을 알아봤고, 결과적으로 박사과정에 진학해서 지금은 수료상태로 졸업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Q: 어떻게 본다면 열정을 통해 연극을 하는 것에서 콘텐츠를 만드는 것으로 꿈이 발전하였고, 또 그 과정에서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결단력과 추진력이 돋보이는 것이 인상적이네요. 이제 박사과정을 수료하셨고, 그동안 상명대와의 스토리도 굉장히 많으셨던 것 같은데 혹시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박선정: 시작에 앞서서 조금 무거운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저는 암 경험자입니다. 제가 연극계에서 주로 활동하기도 했고, 또 유명하진 않다 보니 생활이 그렇게 녹록치 않았어요. 지하 연습실과 극장에서 차비도 못벌던 시기가 있었죠. 그럼에도 그 어려운 시절을 잘 버텨냈고, 술이나 담배를 하지 않았을 뿐더러, 또 가족력도 없었기에 제 건강에 대해서는 큰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제 인생에서 암은 아예 상상도 하지 않았던 병이었어요. 아까 말씀드렸듯 저는 코로나 이후 박사과정을 하면서, 대면 수업을 거의 못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트센터 조교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이제 상황이 점차 나아지고 대면 수업이 풀릴 때 즈음 약간 몸이 안좋아서 병원을 갔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레 유방암 3기 진단을 받게 되었어요. 마지막 한 학기를 남겨두고 있었는데, 대면 수업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결국 치료를 위해 줌으로 비대면 수업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실 같이 수업을 듣는 분들을 거의 직접 뵈지 못했고, 그랬음에도 다들 저를 걱정해주시고 또 응원해주셨어요. 항암 치료로 인해 머리 없이 모자만 쓰고 수업을 듣는 제 모습을 다들 안타까워 해주시고 많은 격려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인지 마지막 졸업 시험만큼은 꼭 학교에 와서 보고 싶었어요. 제가 항암 6, 7차 즈음에 졸업 시험이 있었는데, 항암 치료를 받으면 밥도 제대로 못먹고 기운이 하나도 없어져요. 그럼에도 시험을 잘 마치고 싶단 마음으로 몸 상태를 끌어올려 직접 차를 몰고 학교로 와 시험을 봤던 기억이 나네요. 해냈다는 성취감도 들었고요. 그리고 인상 깊었던 일을 하나 더 꼽자면, 앞서 말했듯 어려운 상황에서도 많은 응원과 에너지를 받아서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게 되었어요. 그리고 몸 상태도 조금씩 호전되면서 제가 받은 것들을 학생들과 나누고 싶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다 지난 학기, 너무 좋은 기회가 생겨 한일문화콘텐즈전공의 캡스톤디자인 수업에서 특강을 하게 되었습니다. 같이 미디어 실습을 하며 학생들과 교감을 했는데 너무 행복한 거에요. 다시 활기찬 삶을 사는 것 같아 오히려 제가 더 많이 얻어갔던 그런 수업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를 빌어 학생들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어요. Q: 사실은 되게 어려운 시간을 보내셨다는 생각이 드네요. 보통은 좌절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일이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정이라든가 또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기 때문에 끝까지 해냈다는게 참 대단한 일인 것 같습니다. 거기다 한일문화콘텐츠 학생들을 만나 특강까지 하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아갈 수 있다는 게 어떻게 보면 인간 승리라고 할까요? 그런 생각이 드네요. 박선정: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암은 준비하지 못한 만남이었어요. 돌이켜 보면 암에 대해 많이 무지했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 암은 술, 담배와 큰 연관이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가족력이나 나이듦으로 생기는게 대부분이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30대 중반의 나이에 암에 걸리고 나니까 그게 전부가 아니구나 느꼈어요. 통계학적으로 3명 중 한 명이 죽음을 맞이하기 전까지 암을 경험한다라고 하는데, 그게 저였던거죠. 암을 제가 경험할 거라고 상상을 못했기 때문에 정말 아무것도 몰랐죠. 항암이 뭔지도 몰랐고, 그런게 막상 내 일이 되니까 충격이 컸죠. 저한테 3기라고 하는데 초기도 지났다고 하는데 난 이제 어떻게 해야 되지? 나 죽는건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부모님도 암 소식 듣고 막 쓰러지시고. 소위 말해 대참사가 벌어진 거죠. 하지만 오히려 암에 대해 몰랐기 때문에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항암을 하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생각하면서 그 시간을 견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정말 어지럽고, 울렁거림이 지속되는 등 치료를 받았는데도 몸 상태가 좋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항암 8번 다 끝나고 수술하고 방사선 치료하면 나 정말 살 수 있어‘ 란 생각으로 열심히 버텨냈고, 지금은 3년 반 정도 되니 암 투병 전의 체력만큼은 아니더라도 일상생활하는데 큰 무리가 없습니다. 우스갯소리지만 누군가 “이제 40대라서 그런거야. 암 후유증이 아니라.” 라고 말해줬는데 그렇게 생각해 보니 또 맞는 이야기라서 조금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었죠. Q: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고 있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다르게 보면 지금 시기가 시련을 이겨내는 과정이라 느껴지네요. 그러면서 새로운 기회나, 또 이전엔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 소위 제2의 인생을 맞이하게 되셨단 소식도 들었는데 혹시 들어볼 수 있을까요? 박선정: 아무래도 아직 결혼도 안했던지라 평범한 일상에 큰 이벤트로 다가온 게 바로 암이었거든요. 암 투병 전과 후로 제 삶이 나뉘는 것 같은데, 생각이나 여러 가지 것들이 정말 많이 바뀌었다 생각해요. 전화위복의 기회라고 할까요? 제가 겪은 여성암 (유방암, 자궁암, 난소암 등)의 경우 항암치료를 받게 되면 탈모를 피할 수가 없어요. 저도 첫 항암치료 후 2주가 지나자마자 머리 감을 때 머리카락이 뭉치로 빠지더라고요. 정말 많이 놀랐죠. 그래서 삭발을 하게 되었죠. 여성분들은 아시겠지만 머리라는게 정말 여성으로서 나를 표현할 수 있는 확실한 수단이잖아요? 그 머리카락이 전부 빠지게 되면 그 우울감이라는게 정말 크게 온다고 해요. 저와 같이 항암을 받았던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모습을 남편은 물론 자녀들에게도 보여준 적 없고 보여주기 싫다 할 정도로 심적으로 힘들어하시더라고요. 저도 처음엔 그랬고요.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JTBC ’서른, 아홉‘이라는 드라마에서 ’캐디‘ 배역이 들어왔습니다. 보통 골프장 캐디들이 모자를 쓰는 만큼 당시 제 머리를 감출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대본을 받아서 읽어보는데, 드라마 주인공의 상황이 저와 너무 똑같더라고요. 암에 걸린 여배우라는 설정을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아무튼 모자를 쓰고 촬영장에 가서 촬영을 했었던 기억이 나요. 그 때 ’내가 아프더라도 기회는 계속 오는구나.‘ 란 생각이 들었죠. 앞서 말씀드렸듯이 여자가 삭발을 한다는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제가 유방암에 걸리지 않았다면 평생 삭발할 일도 없었겠죠. 그런데 막상 삭발한 제 모습을 보니까 ’어? 생각보다 괜찮은데?‘ 꽤 마음에 든거에요. 옆에 부모님은 눈물을 흘리시는데 오히려 저는 괜찮아했죠. 그래서 치료를 받고 난 뒤 체력이 어느 정도 돌아오면 스님(비구니) 역할에도 도전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진짜 스님 배역이 들어온거죠. SBS ’꽃선비 열애사‘ 라는 드라마였는데요. 이건 해야겠다 싶더라고요. 내가 생각했던 것들이 그대로 이루어진게 정말 신기했으니까요. 이런 경험들 덕분에 병을 이겨내는 힘을 많이 얻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제일 기억에 남는 경험은 필립스 광고였습니다. 필립스는 많은 분들이 아실만한 글로벌 기업인데요, 이 곳에서 암 환자들을 위한 캠페인 광고를 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광고에 출연을 하게 된거에요. 제가 투병하면서 여러 드라마에 출연하고, 또 다큐멘터리에 출연하며 암 투병 중에도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아마 어필이 된게 아닐까 생각해요. 어쨌든 그렇게 촬영을 하고, 추후에 옥외나 OTT 등에 광고 영상이 송출된다 연락을 받고 ’아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어요. 그러다 얼마 뒤에 관계자에게 전화가 왔어요. 필립스 광고가 타임스퀘어에 걸린다고요. 그래서 “영등포 타임스퀘어요?”라고 물어봤어요. 집에서 갈만한 거리기도 하고, 그리고 꽤 규모가 있으니까요. 근데 “아뇨 뉴욕이에요.” 라더라고요. 그 말을 듣자마자 전화기를 떨어뜨릴 정도로 엄청 놀랐어요. ’아 이건 내가 직접 봐야겠다.‘ 하고 어머니와 같이 직접 뉴옥에 가기로 마음을 먹었죠. 물론 미국까지 가는게 쉬운 여정은 아니었어요. 항암 부작용 때문에 체력이 긴 비행을 버틸지 걱정도 되었고, 잠을 잘 못잤기 때문에 정신과에 가서 혹시 모르니 수면제 처방까지 받고 비행기를 탔어요. 그렇게 뉴욕에 도착해서 광고가 나오고, 그걸 제 눈으로 본 순간 눈물이 나더라고요. ’내가 여기까지 오다니. 아, 암 한 번 요란하게 걸렸다.‘ 짧지만 진짜 유명한 사람들, BTS 같은 사람들이 올라오는 곳에 내 광고가 올라온 것이 가슴이 벅찼습니다. 암에 걸리지 않았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암을 통해서 시련을 이겨낼 힘, 그리고 새로운 희망을 얻은 것 같아 하루하루 감사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Q: 역경 속에서도 긍정적인 에너지가 지속되면서 동문님께 좋은 일들이 온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실 여러분에게도 좋은 에너지가 갈 것 같네요. 동문님의 다음 챕터가 궁금해집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 혹은 목표가 있으실까요? 박선정: 사실 오랜 기간 무명 배우로 살아오면서 자존감도 많이 낮아졌고, 자신감도 많이 떨어졌어요, 우리가 이름대면 알만한 배우들과 달리, 저와 같이 극단에서 연기를 하면 관객도 많이 오지 않을 때가 있었죠. 그런 것들을 경험하면서 슬픈 시간을 보낸 적도 꽤 있었습니다. 그런데 암이라는 큰 시련을 겪으며 많이 달라졌어요. 그동안 힘들었던 시간도 많았지만, 그 대신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한다는 자부심과 행복함 또한 있었단 걸 깨달았어요. 그리고 죽음일 뿐이라 생각했던 암을 이겨내면서 살아 숨 쉰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 역시 많이 없어졌고요. ’이대로 죽기엔 너무 아깝다.‘ 이게 딱 제 이야기인 것 같아요. 내가 배우로서 이름을 날리진 못하더라도, 많은 분들에게 희망과 용기, 그리고 미소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데, 내가 이렇게 멈춰 있으면 안되는 거니까요. 예전엔 ’말하는 대로‘라는 말을 믿지 않았어요. 그런데 제가 투병을 하면서 ’어디가 아픈가?‘ 생각을 하면 그 부위가 아파오더라고요. 반대로 ’이번 주도 치료 잘 받았으니 아픈 곳 없을거야.‘라고 생각하면 진짜 아픈 기운도 없어지는 경험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마음 먹은 대로라는게 제 삶의 철학으로 자리잡았어요. 그래서 이제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그걸 관객분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암 투병과 석박사 생활, 이 두 가지를 거치며 새로 세운 목표도 있습니다. 흔히 배우는 ’쓰여지는 직업‘이라고 하죠. 작품 공고가 올라오면 지원해보고, 또 다른 공고가 있나 찾아보고, 그러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죠. ’내 이야기를 독립 영화로 만들어 보고 싶다.‘ 석박사 과정을 거치면서 콘텐츠 제작 전반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었고, 제 이름을 딴 극단을 제작한 만큼 이번엔 제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작품으로 남겨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20대 무명 배우의 삶, 30대 학구열을 불태웠던 삶, 그리고 40대 이후 암을 이겨낸 뒤의 삶을 그려내 보고 싶습니다. 단순히 이야기 나열이 아닌, 고난을 극복하며 얻은 행복과 꿈을 여러분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그런 작품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Q: 동문님의 이야기와 희망이 담긴 작품이 언젠가 우리 사회의 큰 메시지를 던질 수 있길 바랍니다. 오늘 정말 좋은 이야기들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고 계실 독자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자유롭게 부탁드립니다. 박선정: 항상 꿈을 가지고 살아가셨으면 합니다. 제가 누구나 아는 유명 배우도 아니고, 객관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냐 그런다면 솔직히 바로 답하기 쉽지 않을 거에요. 그렇지만 실패한 삶이냐 묻는다면 절대 아니라 말할 수 있어요.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일을 하면서 내 스스로에게 큰 자부심을 가졌어요. 꿈이 있었기에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가졌고, 그 꿈을 가지고 있기에 다음 챕터를 만들어 나갈 이유가 생겼어요. 저는 무명 배우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꿈을 향해 달려가는 배우입니다. 상명인 여러분들 모두 꿈을 향해 달려가시고, 또 꿈을 이루시길 바랍니다. 잠깐이었지만 저와 만났던 한일문화콘텐츠학과 학우 여러분들도 보고 싶네요. 언젠가 다시 만날 날까지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아만자박배우' 박선정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인생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한 편의 연극이다. 우리는 이 연극에서 무슨 역할인걸까. 캐릭터성 없는 무언가로 남기에 삶은 너무나 길다. 암환자라는 무거운 말 대신 ’아만자박배우‘로 본인을 설명한 박선정 동문의 마지막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녀의 직업은 배우다. 그녀의 꿈은 배우다. 그녀의 미래 역시 배우다. 힘든 시간을 이겨낸 그녀의 무대엔 조명이 비추고 있다. 커튼 콜의 시간이다. 길었던 공연을 마치고 다음 작품으로 다가올 이를 위해 무한한 찬사를 보낸다. 기획: 대외협력처 커뮤니케이션팀
홍보대사에게 ‘자기 PR’을 부탁했다.
이질감이 느껴질 줄 알았는데, 이번에도 동질감이다. 필자가 캠퍼스를 누비던 시절, ‘대학내일’이란 잡지가 한창 건물 곳곳에서 보이던 때가 있었다. 학생회관 3층 여러 잡지들 사이 혼자 청춘같이 생기있게 꽃혀있던 모습은 ‘내가 대학생이긴 하구나’라 괜시리 생각을 들게 했다. 평소엔 거들떠 보지도 않았는데, 과방에서 동기들과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 ‘한 번 보기나 할까?’란 말이 왜 그리도 귀에 박혔던걸까. 표지엔 각 학교 홍보대사들이 모델로 등장했는데, 시원시원한 인상에 트렌디한 복장, 그리고 에너지 넘치는 표정이 ‘수험생 때 꿈꿔왔던 대학 생활’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했다. 술판에 놀자판이었던 나완 얼마나 다르던지. 한화휴제. 오랜만에 학부생 시절 이야기라 신났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청춘이라지만, 그 시절 젊은 혈기는 지금 따라가기엔 벅차다. 책 너머까지 푸르름을 보여주었던 학교 홍보대사들. 그들도 우리와 같은 대학생활을 보냈으리라. 상명대학교 커뮤니케이션팀에서는 더욱 다양한 홍보 콘텐츠 제작과 함께 대학 이미지 향상을 위해 여러 활동과 재학생들에게 실무적인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학생홍보단’을 운영하고 있다. 본인의 전공을 발휘함은 물론, 전공을 뛰어넘은 융복합적 역량을 보여주는 학생홍보단을 이번 상명피플에서 다뤄보고자 한다. 총 2편으로 기획된 12월 상명피플 2편의 주인공은 대학생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바탕으로 상명의 이미지를 널리 알리고 있는 홍보대사 ‘솔찬’의 한서연 학우다. 교내외 여러 행사와 영상 속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한서연 학우는 본인의 강점을 바탕으로 상명의 이미지 홍보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캠퍼스투어, 입시박람회, 홍보동영상 등에 출연해 학교 홍보를 진행하는 한서연 학생의 강점은 무엇일까? 그리고 어떤 이유로 홍보대사를 하게 되었을까? 일상적이고 무난할 수도 있지만, 우리 삶이 그렇듯, 평범함 속에서 또 다른 비범함이 나올 수 있는 법이다. 적어도 심심한 이야기는 아닐테니 오늘도 재밌게 감상하길 바란다. 그렇게 홍보대사에게 ‘자기 PR’을 부탁했다. Q: 안녕하세요. 상명대학교 커뮤니케이션팀입니다. 이번 상명피플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 시작에 앞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한서연 학우 (이하 ‘한서연’): 안녕하세요 상명대학교 홍보대사 ‘솔찬’, 한일문화콘텐츠전공 한서연입니다. 일본과 한국의 문화를 연결하는 콘텐츠 기획과 창작에 관심이 많아 관련 전공을 선택했고, 앞으로도 한일 양국 간의 문화교류를 활성화하는 크리에이터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Q: 만나서 반갑습니다. 홍보대사분들과는 여러 행사를 통해 몇 번 안면이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인터뷰를 하게 되어 또 감회가 남다르네요. 소개에서 말씀하셨듯이 크리에이터가 목표라 하셨는데 홍보대사의 업무와 어느 정도 연결이 되어있지 않을까란 생각도 들어요. 그런데 정확히 홍보대사가 어떤 것인지. 또 어떤 일을 하는지 간단히 이야기 들어볼 수 있을까요? 한서연: 상명대학교 학생홍보단의 정식 명칭은 ‘솔찬’으로, ‘소나무처럼 푸르고 옹골찬’이라는 의미의 순우리말에서 따왔습니다. 이는 상명대학교를 대표하는 홍보대사로서 늘 변함없는 열정과 강인함을 가지고 학교를 알리는 데 앞장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솔찬은 입시박람회, 캠퍼스 투어, 입시 홍보 영상 제작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상명대학교의 매력을 널리 알리며, 학교와 학생들, 그리고 외부 간의 소통을 연결하는 중요한 다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Q: 소개 감사합니다. 홍보대사 이름의 의미부터, 어떤 활동을 하는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좋은 설명이었습니다. 상당히 잘 와닿는 설명인 만큼, 홍보대사 활동에 진심으로 임하신단 생각도 듭니다. 그렇다면 홍보대사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한서연: 올해 4학년이 되면서 전공수업에만 집중하다 보니 캠퍼스 생활이 다소 단조롭게 느껴졌어요. 졸업 전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고, 다른 과 친구들과도 교류하며 새로운 경험을 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작년에 홍보대사로 활동했던 지인에게 솔찬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활동이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장학금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Q: 장학금이라... 상당히 현실적인 이야기군요. 한서연: 아마 많은 학생분들이 장학금과 관련된 고민을 하고 계실거라 생각해요. 아무래도 제일 직접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가장 와닿는 보상이잖아요. 어떤 분들은 좋은 성적을 거둬 장학금을 받을 수도 있고, 또 어떤 분들은 여러 공모전이나 대외 활동 등을 통해 장학금을 받기도 하고요. 각자 보면 본인이 잘 해낼 수 있는 분야에서 장학금의 기회가 열려있는데, 제가 생각했을 때 저의 강점을 십분 발휘하면서 장학금 뿐만 아니라 다양한걸 얻을 수 있는게 홍보대사 활동이라 느꼈어요. Q: 말씀하신대로 장학금과 다른 여러 가지 활동을 할 수 있는게 홍보대사 활동인 것 같네요. 그리고 서연 학생의 강점과도 부합한다는게 메리트라 느끼셨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본인의 강점이 정확히 어떤건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홍보대사와 연결되어 있는지 궁금하네요. 한서연: 저는 시선에서 힘을 얻는 사람입니다. 그 예로 전공수업에서도 늘 발표를 도맡아 해왔으며 교내 창업경진대회와 영어스피치대회 등에서 수상을 했던 경험도 있습니다. 이러한 발표능력은 상명대학교의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는데 필요한 능력이죠. 내 강점을 활용하면서 나 자신도 즐겁고, 학교행사에도 도움이 되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게 해준 좋은 역량이라 생각합니다. Q: 듣고 보니, 홍보대사는 학교를 대표해서 앞에 나서는 활동이 많은데 그거에 딱 맞는 강점이란게 와닿네요. 한서연: 누구나 강점은 있다 생각해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갈고 닦느냐는 오롯이 본인 역량에 달려있어요. 그래서 여러 대회에 참여하면서 강점을 더 극대화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Q: 굉장히 정석적인 답변이군요. 그만큼 본인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곧은 자세로 노력해 온 모습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홍보대사와 한서연 학생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들어봤는데요. 이번에는 홍보대사로 활동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들어볼까 합니다. 올해 초부터 활동하면서 상당히 많은 활동을 해오셨는데요. 그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을까요? 한서연: 여름방학 장마철에 중국 학생들이 상명대학교를 방문해 캠퍼스 투어를 진행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방학, 특히 장마철에 학교에 와본 적이 없어서 학생들이 없는 조용한 캠퍼스의 모습이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평소 캠퍼스 투어는 홍보 대사 2명이서 함께 진행하지만, 방학 기간이기도 하고, 또 여건상 혼자서 오롯이 투어를 맡게 되었는데요. 덕분에 더 큰 책임감을 느끼며 투어를 준비하고 진행했던 기억이 납니다. 다행히 캠퍼스 투어에 참여한 학생들과 함께 상명대 대외협력처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외국에서 온 학생들이지만, 결국 우리 캠퍼스를 알려주고 상명이란 이름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게 하는게 목표이기 때문에 걱정했던 것 보다는 더 수월했던 것 같아요. Q: 외국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캠퍼스 투어라니 굉장히 흥미롭네요. 한서연: 비단 외국인 학생들 뿐만 아니라, 중고등학교에서도 현장체험학습으로 많이 오세요. 특히 고등학생들은 입시와도 연결되어 있다 보니, 다양한 질문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Q: 사실 어떤 행사를 진행한다는게, 그 행사에 대해 일정 수준 이상의 이해가 필요한 상당히 어려운 일이거든요. 특히 캠퍼스 투어라면 학교와 캠퍼스에 대한 높은 이해가 필요할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새로운 걸 깨달을 수 있을 것 같고요. 한서연: 의외일수도 있지만 캠퍼스 투어를 진행하며 깨달은 점이 바로 언어의 중요성이에요. 말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사람들이 잘 이해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부터, 보다 다양한 언어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Q: 한일문화콘텐츠전공이시면, 일본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본어로 진행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드네요. 한서연: 예전에 일본 대학과 교류 차원에서 학생들이 왔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때도 캠퍼스 투어를 진행하게 되었는데, 제 전공이랑 아무래도 딱 맞는 상황이다 보니 저도 언어적으로 다양하게 소통하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재밌던건 일본 학생들도 한국어가 상당히 능숙했어요. 케이팝울 좋아하는 친구도 있었고, OTT로 드라마를 챙겨보는 친구도 있어서인지 되게 의사소통이 원활했어요. 그만큼 다양한 언어를 구사할 수 있으면,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다는 걸 느꼈어요. 캠퍼스 투어는 단순히 학교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른 나라 학생들과 교류하며 새로운 관점을 배우고 제 자신도 성장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Q: 캠퍼스 투어가 정말 많은걸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무언갈 통해 배웠다는건, 그만큼 그것에 열중했단 뜻이기도 하겠죠. 캠퍼스 투어 이외에도 여러 활동을 하셨던거로 아는데, 혹시 간단히 이야기 들어볼 수 있을까요? 한서연: 여러 대학이 참여하는 입시 박람회가 있습니다. 보통 학기 별로 1회 정도 진행하는데, 이때는 다른 홍보대사들과 같이 참여하게 됩니다. 상당히 규모가 큰 행사이고, 많은 분들이 오시는 만큼 준비해야할 것들이 굉장히 많아요. 대부분의 실무를 담당 선생님들이 전담하신다면, 저희는 홍보대사로서 박람회 관광객들이 상명대 부스에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하고, 또 재학생으로 알려줄 수 있는 여러 가지 정보들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달 19일부터 코엑스에서 진행되는 ‘2025학년도 정시 대학입학정보박람회’에서도 저희 솔찬을 만날 수 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릴게요. Q: 정말 여러 분야에서 홍보대사 활동을 하는게 같은 상명인으로서 굉장히 대단하다 느껴집니다. 이번 박람회에서도 좋은 활약 기대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에, 약간 쉬어가는 차원 겸 가볍게 궁금한 질문을 하나 드릴까 합니다. 서연 학생 외에도 다른 홍보대사들이 있는 걸로 아는데, 홍보대사들 간의 교류가 어느 정도 있는 편인가요? 한서연: 제가 학교 다니면서 동아리 활동을 한 적이 없어요. 그래서 다른 학과 친구들이 거의 없는 편인데, 홍보대사를 하면서 다른 과 친구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어요. 캠퍼스 투어도 그렇고, 박람회도 그렇고, 기타 여러 행사에서도 다른 홍보대사들과 같이 활동하는 일이 많은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교류하게 되는 것 같아요. 같이 회식도 하고, 단톡방에서도 많이 놀고 되게 평범한? 대학생같이 친하게 지내고 있어요. ‘솔찬’이 서울캠퍼스와 천안캠퍼스 공통으로 있다 보니 천안캠퍼스 친구들과도 친해질 수 있는게 꽤 좋은 경험인 것 같아요. 예체능 전공하는 친구들도 많은데 졸업 공연이나 전시를 한다고 하면 다 같이 가서 보고 응원하던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Q: 같은 목표를 가지고 활동하는 친구를 만나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얼마나 될까요? 이야기를 들어보면 홍보대사 활동이 굉장히 매력적인 활동이라 느껴집니다. 이 인터뷰를 보고 계실 학생분들 중에서도 ‘나도 홍보대사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가진 분들이 계실 것 같은데, 혹시 그런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 있으신가요? 한서연: 음... 예전에 어떤 대화를 나누다가 ‘홍보대사 하면 학점 받기 힘들지 않아?’란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아무래도 여러 행사나 활동을 하다 보면 학업에 지장이 있을거 같다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되게 진부한 이야기지만 하기 나름인 것 같아요. 공부나 취업 준비 등에 영향이 있을 정도로 할 일이 많은 편은 아니라 생각하고, 시험기간 중 활동에 대한 부담도 없을 정도에요. 저도 지난 학기 홍보대사를 병행하면서 학점 4.5로 수석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Q: 4.5는 제가 학교 다닐 때도 받은 기억이 없는 점수인데 굉장히 대단하군요. 한서연: 그만큼 부담이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처음에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프론트에 나서서 말하고 활동하는걸 선호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홍보대사가 저에게 잘 맞는 활동이고, 시간적으로도 여유로워서 자기계발에 정말 잘 맞다고 느낍니다. 또 솔찬 관리를 하시는 커뮤니케이션팀 선생님들께서도 학생들 상황을 우선적으로 배려해주시는 환경입니다. 인원도 적진 않다보니 스케줄 조정도 유연하고 자유롭게 가능하고요. 그래서 저와 같은 성향의 분들이라면 꼭 해보셨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많은 걸 배울 수 있고, 또 새로운 경험이 될거라 자부합니다. 그러니 홍보대사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망설이지 말고 지원해보시기 바랍니다. Q: 많은 학생들이 서연 학생과 같이 열심히 살고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만약 홍보대사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저희 커뮤니케이션팀에 언제든 문의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인터뷰를 마무리하려 합니다. 굉장히 재밌는 이야기 나눠봤는데요, 마지막으로 자유롭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부탁드리겠습니다. 한서연: 얼마 전에 읽은 책에서 ‘이십대란 나이는 무언가에 사로잡히기 위해서 존재하는 시간대다. 그것이 일이든 사랑이든 하나씩은 필히 사로잡힐 수 있어야 인생의 부피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것이다.’라는 구절을 읽고 굉장히 감명이 깊었어요. 지금의 경험이 내 인생의 기반이 될거라 생각하니,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많은 걸 배워야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상명대 여러분들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대학생활에서 주저하지 말고, 망설이지 말고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실컷 치열하게 도전해봅시다! Q: 파이팅 넘치는 말씀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2024학년도 12월 상명피플 인터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서연: 지금까지 상명대학교 홍보대사 ‘솔찬’의 한서연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홍보대사 ‘솔찬’은 오늘도 본인들의 자리에서 학교의 이미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전에 각자의 인생을 위해 부단히도 달리고 있었다. 이 글을 보고 있을 이들 모두 역시 스스로를 위해 앞으로 나가고 있을거라 믿는다. 각자의 평범함을 간직한 채로 특별한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땀흘리는 우리 모두를 위해 상명피플은 2025년에도 더 알찬 인터뷰와 콘텐츠를 가져올 것이다. 미리 연말 인사 겸 새해 인사를 올리며, 멀지 않은 시기에 여러분을 만나길 바란다. 기획: 대외협력처 커뮤니케이션팀
학생인턴에게 ‘무슨 생각 하세요?’라고 물어보았다.
일단 동질감을 느꼈다. 여러분들에게 한 가지 물어보겠다. 당신이 만약 오렌지 농가의 농장주라면, 어떤 방식으로 당신의 오렌지를 홍보할 것인가? 누군가는 직접 가게를 차려 호객 행위를 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포스터를 만들어 이곳 저곳에 붙일지도 모른다. 어떤 이는 오렌지의 위대함을 알리는 영상을 어딘가에 투고할 수도 있다. 방법은 다양하다. 지구상에 사람이 몇인데 방법이 획일적일 수는 없지 않은가? 다만,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해야 이목을 ‘잘’ 끌 수 있냐는 것이다. 정보와 PR이 쏟아지는 지금, 무언가를 홍보하기 위해서는 나만의 색깔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상명대학교 커뮤니케이션팀에서는 더욱 다양한 홍보 콘텐츠 제작과 함께 대학 이미지 향상을 위해 여러 활동과 재학생들에게 실무적인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학생홍보단’을 운영하고 있다. 본인의 전공을 발휘함은 물론, 전공을 뛰어넘은 융복합적 역량을 보여주는 학생홍보단을 이번 상명피플에서 다뤄보고자 한다. 총 2편으로 기획된 12월 상명피플 1편의 주인공은 디자인과 영상을 통해 홍보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는 ‘학생인턴’의 김슬찬 학생이다. 학생인턴의 영상팀 김슬찬 학우는 역사콘텐츠전공의 평범한 학생이다. 그런 그가 단편영화의 촬영감독을 맡았다고 하면 믿을 수 있겠는가? 그가 드론을 날려 서울캠퍼스를 한 눈에 담은 영상을 연출했다면 어떤 작품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머리 속으로만 상상했던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김슬찬 학우의 역량은 어떤 것일까? 학생인턴 활동을 통해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던 그의 이야기와 학생인턴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한 가득 눌러담았으니 든든하게 보길 바란다. 그렇게 학생인턴에게 ‘무슨 생각 하세요?’라고 물어보았다. Q: 안녕하세요. 상명대학교 커뮤니케이션팀입니다. 이번 상명피플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 시작에 앞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김슬찬 학우 (이하 ‘김슬찬’): 안녕하세요. 저는 상명대학교 역사콘텐츠전공의 22학번 김슬찬입니다. 현재 상명대학교 학생홍보단 학생인턴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영상팀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Q: 학생홍보단을 이 자리에서 뵈니 감회가 남다르네요. 굉장히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고 계신걸로 아는데, 독자분들에게 학생인턴이 어떤 것인지 소개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김슬찬: 학생홍보단, 그 중에서도 학생인턴은 학생의 눈높이에서 학교 홍보 콘텐츠를 기획, 제작하는 팀입니다. 크게 영상팀과 디자인팀으로 나눠져있고요. 시기별, 행사별, 또 저희만의 특색있는 콘텐츠를 학교 공식 SNS에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사실 학교 홍보는 부서별 전문가분들이 진행하시는게 일반적이라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학생들과 같이 협업하는 이유가 있을까 궁금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콘텐츠의 주 소비층이 학생이잖아요? 그렇다면 학생의 눈높이에서도 콘텐츠 제작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학생들의 의견을 적극 수용해서 형식이나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작품들을 만들 수 있게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라 보시면 됩니다. Q: 학교 행정을 회사로 본다면, 저희는 직장인의 입장에서 볼 수 있는 건데 학생인턴 같은 경우는 실제로 학생들의 입장에서 만들 수 있는 차이가 있다라는 말씀이군요. 굉장히 인상이 깊은 것 같아요. 그렇다면 학생인턴에 지원하게 된 동기가 있을까요? 김슬찬: 작년에 총학생회 홍보국에서 활동했었어요. 홍보부에서 하는 업무가 지금 학생인턴에서 하는 업무와 거의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총학생회의 활동이나 이미지를 홍보하는 것도 필요한데 가장 더 눈길이 가고, 가장 궁극적인 목표는 학교 홍보로 이어지는 것 같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국 학교 안에서 이루어지는 자치 활동이니까요. 그때도 이것저것 많이 만들었는데 제가 만든 것들이 좀 더 학교의 공식적인, 그러니까 학교 입장에서 내보내는 홍보물이었으면 좋겠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보고 좀 더 힘을 받아서 더 많이 더 좋은 퀄리티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제일 컸습니다. 그러던 중, 학생인턴 프로그램이 제 생각과 딱 맞아 떨어진다 생각이 들어서 바로 지원하게 되었고, 또 다행히 선발되어 지금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Q: 어떻게 보면 ‘학생 자치기구에서 진행하는 것과, 학교의 공식적인 이름을 걸고 하는 건 약간 사람들이 다르게 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걸 체험해 보고 싶으신게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지금은 영상팀에서 작업을 하고 계시다고 들었는데 본인의 전공 혹은 강점이랑 연관되어 있나요? 김슬찬: 제가 22학번인데 99년생, 세는 나이로 스물 여섯입니다. 제가 학교를 군대 전역을 하고 늦게 입학했습니다. 군대 가기 전까지는 사진 기자 일을 약 2년 정도 했었는데,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저는 이미지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는 거나 표현하고 싶은 거를 이미지화해서 누군가한테 전달하는 거에 관심이 많죠. 그때부터 카메라와 사진에 흥미를 가졌고, 전역하고 나서부터는 영상에도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좋은 영상을 봤을 때 딱 받는 감명이라든가 그런 게 있잖아요. 그걸 실제로 만들어보면 어떨까란 생각도 들었고, 22년도에 입학한 이후로는 영상 위주로 많이 작업을 했던 것 같아요. 더군다나 제 전공이 역사콘텐츠전공인데, 콘텐츠라는게 결국은 정보나 목적을 더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방법이잖아요. 그러한 배경도 어느 정도 반영된 것 같습니다. Q: 그러면 말씀한 것들이 장래 진출하려는 분야와 관련되어 있는건가요? 김슬찬: 네 맞아요. 그런 동기가 있는게 중요하다 생각해요. 왜 우리가 먹기 싫은 음식 남이 억지로 먹게하면 기분도 안좋고 체하기도 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누군가 시켜서 하는 것 보다는 내가 좋아서, 내가 스스로 설계해서 하는 것이 더 매력적인거 같아요. 당장 저부터가 누가 ”너 이거 안하면 안돼!“하면서 일 시키는걸 정말 안좋아하거든요. 물론 돈이 걸려있다면 모르겠지만요. 그렇지만 무엇이 되었던 내가 하고 싶은 이유가 명확해야 동기부여가 생기는 것 같아요. Q: 동감합니다. 저랑 성향이 되게 비슷하시네요.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우리가 과정을 거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까지 반 년 정도 학생인턴 활동을 해오셨는데요, 그동안 작업하셨던 결과물 중 ‘이건 내가 누군가에게 자랑해도 되겠다.’ 싶은 작품이나 그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김슬찬: 이번 여름에 스낵 무비 형식으로 제작한 ‘납치’를 꼽을 수 있겠네요. 되게 많은 제작 에피소드가 있었고, 저에게도 성장할 수 있었던 기회를 제공해줬습니다. Q: 구체적으로 들어볼 수 있을까요? 김슬찬: 저는 ‘납치’의 촬영 감독을 맡았는데요. 단순히 영상을 찍는 것 뿐만 아니라 구도에 따른 등장인물의 인상 변화나 스토리의 전개, 그리고 배우분들의 컨디션까지 점검하면서 촬영을 이끌어가다 보니 생각보다 할게 많더라고요. 그럼에도 다른 학생인턴 학우들과 배우분들도 맡은 바 소임을 정말 잘해주셔서 무사히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저희 홍보대사 ‘솔찬’ 학우분들께서 많이 도움을 주셨는데요, 솔찬에 연극 전공자분들이 계셔서 배우로 나와주셨습니다. 그리고 다른 배우분들도 솔찬분들 인연으로 섭외할 수 있었고요. 어떻게 보면 학생홍보단 전체가 만든 영화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러다 보니 더 잘하고 싶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Q: 이 작품이 촬영 감독 데뷔작이라고 하던데... 김슬찬: 네 좀 거창한 감이 있겠지만, 어쨌든 그전까지는 숏폼이나 간단한 영상 위주로 찍었었는데 드라마처럼 대본, 스토리보드, 오디오까지 필요로 하는 연출물 촬영은 처음이어서 되게 긴장을 많이 했어요. 그만큼 투입되는 인원도 많아서 관리도 잘해야 했고, 준비도 이것저것 해야했죠. 촬영 이틀 전에 현장 답사도 진행했었는데, 촬영하다보면 발생할 수 있는 변수들이랑 동선을 체크해야해서 꽤 많이 점검했던 기억이 납니다. 처음인 만큼 더 제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컸었어요. 그날 아침 8시에 촬영을 시작했는데, 제 인생에 있어서 그 정도로 집중했던게 시험 말고 더 있었나 싶을 정도로 촬영에 몰입했던거 같네요. 한 9시간 촬영 끝에 원하는 결과물을 얻어서 되게 뿌듯했습니다. 저녁에 녹초인 상태로 집에 들어갔지만, 그래도 내가 하나 해냈구나라는 생각도 들고 성취감이 올라와서 지금까지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Q: 영상이 나오고 부서에서 같이 봤었는데, 되게 놀랐어요. 우리 학생들이 이 정도 수준까지 연출을 할 수 있구나란 생각도 들고, 전혀 상상하지 않았던 방식의 결과물이었는데도 정말 잘 만들었다 느꼈습니다. 비단 ‘납치’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포스터나 영상 등 많은 콘텐츠들이 상당히 좋은 퀄리티로 만들어졌는데요.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좀 흥미로웠던 작품들 몇 개가 있었습니다. 드론 촬영이었는데요. 캠퍼스 전경을 드론으로 촬영한다는걸 누구나 상상해봤겠지만, 실제로 진행하기까지는 굉장히 많은 과정이 필요한 작업이거든요. 이 때 이야기도 조금 들어볼 수 있을까요? 김슬찬: 드론 촬영은 작년부터 해보고 싶었던 하나의 목표였어요. 원래는 서울캠퍼스가 비행 금지구역이였잖아요. 그러다 최근 청와대가 개방되면서 승인 신청을 통해 촬영이 제한적으로나마 가능하게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촬영을 해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죠. 다들 아시겠지만 저희 캠퍼스가 언덕으로 대표되는, 그러니까 굉장히 높은 곳에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게 익숙한데, 반대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캠퍼스는 어떨까란 궁금증도 생겼습니다. 그래서 캠퍼스 투어 하듯이, 드론으로 캠퍼스를 한번 찍어보자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학생인턴에 붙었을 때, 이 작업은 꼭 해보고 싶었어요. 사실 혼자한다면 할 수 있는 작업이지만, 아무래도 전경을 모두 찍는다는게 쉬운 일은 아니기도 하고, 그리고 학교 공식으로 촬영한다면 더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있을거라 판단했어요. 그래서 여름방학 때 촬영을 진행하게 되었는데요. 승인 신청과 촬영 과정에서 선생님들이 많이 도와주신 덕분에 수월하게 촬영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무언갈 해냈다는 성취감과 함께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어요. Q: 저도 학생 때 캠퍼스를 보면서 ‘항공사진으로 찍으면 이쁘겠다.’ 생각을 했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청와대 때문에 촬영이 불가능 했었거든요. 그런데 슬찬 학생의 영상을 보니 옛날 생각도 나고 굉장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지금까지 좀 인상깊었던 결과물 위주로 이야기 나눴었는데요, 단순히 학생인턴에 그치지 않고 외부에서도 두각을 보이고 있지 않을까란 생각도 드네요. 혹시 여러 활동을 하신게 있으신가요? 김슬찬: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나는 자기계발, 나머지 하나는 대회. 전자부터 말씀드리자면 일단 전 사진영상 분야로 진로를 잡았어요. 그래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여러 시도를 하면서 제 숙련도를 높이는게 정말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지금도 프리랜서 형태로 종종 일을 하고 있는데, 자서전 출판을 준비하는 분과 연락이 닿아 책에 수록할 프로필이나 여러 사진 등을 촬영할 기회가 생겨 촬영도 진행했습니다. 또 제 형이 영상 홍보 업체를 운영하고 있어 종종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작업에 참여하면서 현장 경험도 쌓고 있습니다. 이렇게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여러 공모전에도 도전을 해봤습니다. 한국인삼협회에서 주최하는 1분 영화제가 있었는데요. 인삼 소비 촉진을 짧은 시간 내에 잘 녹여내는게 키포인트였습니다. 그래서 합이 잘 맞는 사람과 같이 하면 좋겠다 생각이 들었고, 여자친구를 배우로 해서 촬영을 했는데 생각보다 좋은 결과물이 나와 장르상을 받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여름 전국역사학대회에서 주최하는 콘텐츠 대회가 있었는데요, 같은 과 학우들과 함께 학교 아래 있는 홍지문과 탕춘대성을 주제로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학교와 가까운 곳에 사적이 있는걸 활용해서 다양한 이야기를 펼쳤고, 우수상까지 타게 되었습니다. Q: 정말 많은 활동을 해오셨네요. 학업과 병행하면서 본인의 기량을 갈고 닦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텐데, 그럼에도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대단하다 느껴집니다. 여러 작업을 해오신 만큼, 더욱 많은 아이디어가 필요하지 않을까란 생각도 듭니다. 혹시 슬찬 학생의 아이디어 원천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김슬찬: 제가 생각했을 땐, 영상이나 디자인, 촬영 등은 창의력도 필요하지만 기본적인 형식을 잘 갖추는 것 역시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동종 업계의 동향을 어느 정도 파악할 필요가 있죠. 레퍼런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분석을 통해 이 틀에 내 스타일을 어떻게 녹여낼까 고민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아이디어가 하나 둘 나오는 것 같아요. 작년 총학생회에서 활동했을 때 국장, 회장 선배에게 배운게 있는데, 인스타그램에 있는 주요 대학 총학생회와 학교 공식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해서 올라오는 게시물을 확인하는 거에요. 이게 단순히 ‘얘네는 이렇게 디자인 했네?’로 끝나는게 아니라 ‘아 여긴 브랜딩을 기반으로 굿즈 관련 사업 홍보를 이렇게 하는구나.’로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것으로 반영할 수 있도록 고민하는 것이죠. 실제로도 제가 관심 있게 봐왔던, 그리고 지금까지도 좋은 교보재처럼 삼고 있는 곳들이 몇 군데 있어요. 여기서 큰 틀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는다면, 스토리적인 아이디어나 특색을 삼을 수 있는 것들은 제 개인적인 경험 혹은 다른 분야의 이야기 등을 통해 하나 둘 얻는 것 같아요. 결국에 아이디어는 사람 생각을 통해 나오니까, 최대한 많은걸 보고 들으면서 분석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생각합니다. Q: 아이디어에 대한 심도있는 분석이 되게 흥미로운 것 같습니다. 또 생각에서 그치지 않고 실천할 수 있다는 게 어떻게 보면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아요. 혹시 지금 학생인턴으로 준비 중인 작품에 대해 간략히만 이야기 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김슬찬: 키워드만 미리 말씀드리자면 ‘몰랐던 이야기’랑 ‘각양각색’입니다. 지금 열심히 제작하고 있으니, 자세한 이야기는 곧 상명대학교 공식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통해 확인해주세요. Q: 조만간 업로드 될 작품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굉장히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시간이었는데요. 이제 곧 마무리를 지어보려 합니다. 이 이야기 통해 학생인턴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 생길 수 있을 것 같은데, 혹시 다음에 학생인턴에 지원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 있으신가요? 김슬찬: 제가 활동하면서 느꼈던 건, 엄청난 실력? 이런걸 요구하진 않아요. 학생인턴의 취지가 ‘학생들의 관점에서’ 보는 것에 무게가 있기 때문에 탐구력, 트렌드를 읽을 수 있는 눈을 가지신 분들이라면 지원해보셨으면 합니다. 비단 학생인턴 뿐만 아니라, 학생회나 동아리 등 학교 내에서 다양한 활동을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여러 사람을 만나보고 새로운 일을 해보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열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Q: 굉장히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추가로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시다면 부탁드립니다. 김슬찬: 제가 어쩌다보니 학생인턴분들을 대표해서 인터뷰까지 하게 되었는데, 우리 학생인턴 동기들, 그리고 홍보대사분들까지 항상 열심히 활동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말씀드리고, 남은 기간도 같이 좋은 결과물 만들면서 열심히 하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Q: 이상으로 2024학년도 12월 상명피플 인터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슬찬: 감사합니다! 학생인턴의 캔버스는 여러 색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각자의 색깔을 가진 채 하나의 그림을 완성해 가는 모습은 잠깐 잊고 살았던 청춘의 푸르름을 깨우고 있다. 어떤 미래가 올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모르기에 더 한 발자국 힘차게 내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오늘도 누군가의 화면 속에는 그들의 이야기가 울려 퍼지고 있다. 그것이 그들이,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이유가 아닐까. 기획: 대외협력처 커뮤니케이션팀 상명대학교 학생홍보단 학생인턴 '납치' https://youtu.be/diD9sGIuQ6Y?feature=shared
다시 만난 선배에게 ‘다시 만날 세계’를 물어보았다.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015B - 이젠 안녕 中 며칠 전, 학위 수여식이 열린 계당홀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정든 상명대를 떠나 사회에 발걸음을 내딛을 이들과, 그들의 앞날을 축복 해주는 이들로 가득 찬 공간은 시끌벅적함 속의 아련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 생각에 잠길 틈도 없이 셔터가 터지고, 축복과 꽃다발이 오가는 자리가 끝난 뒤 그들은 어떤 길을 걸을지 생각에 잠겼다. 시기가 맞아 원하던 바를 이룬 이도 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미래를 위해 정진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그래왔듯 말이다. 다시 만났을 때,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이들도 있을테다. 2020년 8월. 상명피플이 만났던 한울 동문을 기억하는가? ‘하고자 하는 것을 찾고, 가능한 많은 고민과 경험을 하라.’며 성찰과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한울 동문의 말은 많은 학생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국제개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내실을 다져가던 그는 현재 글로벌녹색성장기구(GGGI) 세네갈사무소의 Agriculture and Rural Development Specialist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과 아프리카를 이어주는 교두보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4년이란 시간이 흘렀음에도, 한울 동문은 상명대와 인연을 이어 나가고 있다. 그는 지난 5월 진행된 ‘상명人이 함께하는 상명In.Sight JobFair’의 국제개발협력 멘토로 참가해 진로를 고민하는 재학생들에게 아낌없는 조언과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그의 모습은 한결같았다. 그가 남겼던 이야기, 그 후의 일들이 궁금해지던 찰나에 상명피플은 한울 동문을 다시 한번 만나보기로 하였다. 프로그램 이후 6월에 세네갈로 파견된 한울 동문과의 재회는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 낯설 수도 있겠지만 이런 재회도 괜찮지 않은가? 그렇게 다시 만난 선배에게 ‘다시 만날 세계’를 물어보았다. Q: 안녕하세요. 상명대학교 커뮤니케이션팀입니다. 이번 상명피플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 시작에 앞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한울 동문 (이하 ‘한울’): 안녕하세요. 저는 상명대학교 역사콘텐츠학과 졸업생 한울입니다. 상명피플은 두 번째네요. 지금은 글로벌녹색성장기구(GGGI) 세네갈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Q: 2020년 8월 이후 4년 만에 다시 찾아뵙네요. 그때도 동문님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는데, 인터뷰 이후 동문님의 근황을 간단히 듣고 싶습니다. 한울: 첫 인터뷰 당시에는 국내 한 재단에서 인턴으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케냐파견, 대학원 진학, 국제기구 인턴을 거쳐 지금의 자리까지 왔는데요. 첫 인터뷰 시기에 코로나19가 극심했던 기억이 나네요. 여러 제약으로 인해 활동이 제한되어서 약간의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해외에서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좋은 기회가 닿아 케냐 파견을 통해 실제 현장에서 적정기술을 활용하여 모니터링 하는 법을 온라인 집체교육을 통해 수강했습니다. 그러다가 대학원에 진학하여 본격적으로 국제개발에 대해 배워야겠다고 생각하여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해서도 꾸준히 경험을 쌓고자 노력했습니다. 한국국제협력단 글로벌인재교육원에서 2개월간 인턴을, 한국개발연구원 국제개발협력센터의 경제발전지식공유사업(KSP:Knowledge Sharing Program) 인턴인 YKSP 6기로 활동하며 우즈베키스탄 정책자문 사업을 지원했습니다. 2022년부터 2023년 월드프렌즈코리아 I(C)T봉사단으로 활동하며 우크라이나 대학생과 청년을 대상으로 온라인 봉사교육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환경부와 한국환경공단이 주최하는 ‘2023 국제환경전문가 양성과정’의 교육생으로 선발되어 한 달 동안 교육을 받고 수료했습니다. 수료생에게는 국제기구에 지원할 기회가 주어지는데, 이때 글로벌녹색성장기구(GGGI) 평가실(IEU: Impact and Evaluation) 인턴에 합격했습니다. 이때가 대학원 3학기였는데요. 대학원과 인턴생활을 병행하다가 대학원 4학기 때 컨설턴트로 근무를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올해 7월부터 글로벌녹색성장기구 세네갈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Q: 엄청 왕성하게 다양한 활동을 하셨네요. 4년이란 시간이 길긴 하지만 자칫하면 무의미하게 흘러갈 수도 있는데, 정말 알차게 보내신게 대단한거 같습니다. 한울: ‘대학 생활을 알차게 보내자’가 제 모토였어요. 그런데 이게 대학에서만이 아니라, 인생 전반까지 가져가야 원하는 삶을 영위할 거라 생각했죠. 그렇게 느낀게 지금까지 달릴 수 있던 원동력이라 생각합니다. Q: 신념이 원동력으로 이어진다는 게 중요하죠. 한울 동문님도 그 원동력을 바탕으로 목표를 향해 달리고 계신데요. 그 과정에서 졸업 이후에도 상명대와 계속 인연을 이어나가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한울: 전 상명대학교에게 많은 걸 받았던 사람이라 생각해요. 2016년도에 자기설계학기제를 처음 하겠다고 나섰을 때에도 학교 교무팀에서는 흔쾌히 저의 제안을 받아주었습니다. 2018년에 교환학생을 갈 때도 전공 교수님은 물론 커뮤니케이션팀(舊 대외협력실)에서 튀르키예 교환학생을 추천해주셨습니다. 졸업 후에도 대학일자리플러스센터에서 상담을 받았습니다. 원어민 교수님과 인연이 되어 특강 형태로 재학생 분께 강의하기도 했구요. 2024년 직무박람회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렇게까지 활동했던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그저 학교에서 경험한 것들이 제 삶을 이끌었으니까요. 그래서 굳이 따지자면 받은 만큼 후배들에게 베풀고 싶은 마음인거 같아요. 재학생분들께서도 졸업 후에도 학교를 잊지 않고 학교를 오가며 귀한 인연을 이어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Q: 졸업한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모습이네요. 지금까지 이야기해주신대로 국제개발협력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여러 활동을 펼치시던 중 글로벌녹색성장기구(GGGI)에 몸담게 되셨는데, 이곳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한울: 우선 모든 사업은 평가로 마무리되기에 평가 업무를 담당할 수 있는 기구를 찾았는데요, 바로 글로벌녹색성장기구의 평가실이 있었습니다. 그게 첫 이유고요. 서울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기구라는 점도 꼽을 수 있겠네요. 서울에 국제기구를 둔 다른 몇몇 국제기구와는 다르게, 글로벌녹색성장기구는 대한민국이 설립과 UN에서의 공인까지 주도적으로 견인했다는 점에서 다른 국제기구와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글로벌녹색성장기구는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빌딩에 있어 대학원과 병행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 기후변화가 대두한 것도 주요 지원동기였습니다.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개선을 넘어, 친환경적이면서도 지속 가능한 소비와 경제구조를 수립하는 것이 미래의 주요 과제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기후변화를 주제로 국제기구에서 업무를 익히는데, 그 시작을 평가로 잡을 수 있다면 큰 성장의 계기가 되리라 판단했고요. Q: 굉장히 의미있는 선택이었군요. 단순히 취업이 목적이 아니라, 청사진까지 그려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지금은 어떤 업무를 맡고 계신건가요? 한울: 지금은 세네갈사무소에서 기후스마트농업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세네갈강 유역은 기후변화에 취약한데요. 이에 대응하고자 글로벌녹색성장기구는 그린하우스와 태양광 관개시설을 짓고, 지역 농민을 대상으로 역량 교육을 실시하고, 한편으로 해커톤을 진행하여 창업도 지원합니다. 상기한 각 사업의 진행 상황을 수시로 체크하고 성공적으로 사업을 마칠 수 있도록 전방위적으로 지원하는게 업무라고 보시면 됩니다. Q: 담당하신 사업들이 해당 지역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되는 것들이네요. 관리 차원에서 현지 체류가 있을 것 같은데, 현재 세네갈에 거주 중이신건가요? 한울: 네, 6월에 들어와서 지금은 수도인 다카르에 머물고 있습니다. 11개월, 거의 1년 동안 체류하면서 사업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Q: 타국에서 생활한다는게 쉬운 일은 아닐거 같아요. 한울: 어느 정도 감수해야하는 것들도 있죠. 한국과 세네갈 시차가 9시간 정도 되는데요, 생활 패턴을 통째로 바꿔야하는게 큰 과제였죠. 그런데 제가 선택한 길이고, 무엇보다 이 일을 하면서 얻는 보람이 커서 크게 문제되진 않는거 같아요. 지금은 이 일상에 적응했고요. 튀르키예로 교환학생을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얻었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Q: 학창 시절 경험이 또 이렇게 작용하는군요. 아직 얘기 나누기엔 이를 수도 있는데, 직접 생활하면서 느낀 세네갈은 어떤 곳인가요? 한울: 우선 세네갈은 아프리카에서 평화적으로 정권을 교체한 경험이 있는 나라입니다. 또한, 아프리카 최서단에 있고 프랑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요. 그래서 전반적으로 민주주의가 잘 정착된, 아프리카에서는 손에 꼽을만한 국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릴 적부터 가졌던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들이 잘못되었단 것도 느낍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아프리카와는 분명히 다릅니다. 물론 예외도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제가 거주하고 있는 수도 다카르는 충분히 발전한 도시입니다. 모바일 결제, 택시 호출 앱 등이 활성화되어 있고, 다른 웬만한 도시와 견주어도 무리 없을 정도예요. Q: 저도 궁금해지네요.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궁금증일까요? 세네갈에 간다는건 사실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데요, 세네갈 파견의 비하인드가 있을까요? 한울: 저는 한·아프리카재단의 차세대아프리카전문가(YPA) 제도를 거쳐 파견인력으로 선발되었습니다. YPA는 다른 국제기구 파견 프로그램과는 다르게, 아프리카 지역을 타겟팅하여 국제기구 직원을 파견하는 제도입니다. 아프리카 대륙엔 흔히 말하는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국가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의 나라가 식민통치를 벗어나 독립한지 100년이 채 되지 않는데, 그 과정에서 독재와 내전 등 정세의 혼란을 겪었기에 아직까지도 과도기를 겪는 곳들이 많습니다. 자연스럽게 사회, 경제, 정치, 환경 등 여러 분야에서 개발의 여지가 많이 남아있는데요, 국제개발의 길을 걷는다면 자연스럽게 가야할 곳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욱이 최근 국제개발의 주요 화두 중 하나가 녹색성장인데요, 기후변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지속 가능한 발전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했을 때, 아프리카 파견은 필연이 아니었나 싶네요. Q: 파견 준비 과정에서도 여러 에피소드가 있었다 들었습니다. 한울: 파견 직전이었는데요. 6월에 한-아프리카 정상회의가 서울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그 부대 행사로 여러 기관에서 부스 운영이 이뤄졌는데요. 글로벌녹색성장기구 부스에서는 ‘차세대아프리카전문가 제도 소개’ 부스를 열었습니다. 이 부스에서 제도 홍보를 위한 인터뷰 영상을 제작하게 되었는데요, 인터뷰 대상자로 1) 한국인으로서 2) 글로벌녹색성장기구에 근무하면서 3) 아프리카의 파견(예정)인 사람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조건에 부합하던 게 저였어요. 그래서 감사하게도 제가 대상자로 선정되었고, 한-아프리카 관계에 대한 향후 중요성과 제도의 필요성과 기대효과 등을 중점으로 인터뷰를 했었는데요. 그 영상이 부스에 송출되면서 성공적으로 행사를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막상 저는 업무와 파견 준비로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행사에 참석하신 직원분들께서 그 상황을 공유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Q: 이야기를 들으면서 느낀게, 목표를 위해 꾸준히 달려온 이에게는 그 기회가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 같습니다. 국제개발협력 분야에 몸담고 있는 현직자로서,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간단한 조언을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한울: 어느 분야든 그렇겠지만, 국제개발협력 역시 하나의 정답이 있진 않습니다. 저 역시도 차근차근 배워가는 중이고요. 여러분들이 생각하시는 것 외에 국제개발협력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히 드리자면, 진출의 기회는 많이 열려 있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글로벌녹색성장기구는 물론 국제기구초급전문가(JPO), 다자협력전문가(KMCO), KOICA UNV대학생봉사단, 외교부 UNV청년봉사단, 외교부 UNV전문봉사단 등 유엔이나 국제기구를 향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고요. KOICA 해외사무소 YP, 환경부, 기상청, 농림축산식품부에서도 국제기구 인턴 진출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니 재학생분들도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국적이나 대륙에 상관없이 직장 동료와 이웃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며 함께 웃고 지낼 수 있는 마인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굉장히 실용적이고 필요한 이야기 감사합니다. 국제개발협력이라는 분야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몸담고 계신 녹색성장 분야 역시 많은 사람들이 본인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활동할 수 있는 분야라 생각합니다. 동문님께서 생각하시는 녹색성장은 어떤 것인가요? 한울: 제 견해를 밝히자면, 녹색성장을 이루기 위해선 환경에 대한 인식개선을 넘어, 우리의 일상 자체가 유연한 기후변화 대응 체계와 연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쓰레기를 태우면 안 되고 플라스틱 사용을 남발하면 안 된다고 알리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왜냐면 사회적으로, 그리고 제도적으로 그런 주장을 뒷받쳐줄 수 있는 배경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개발도상국 교외에 가면 쓰레기를 처리할 방법이 없어 태우고, 그날 쓸 식용유나 휘발유를 구매하기 위해 플라스틱 컵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이 환경문제에 대해 무관심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것을 뒷받쳐줄 수 있는 여건이 충분치 않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지속 가능한 친환경적 발전을 위해 실제적인 해결과 대응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녹색성장이라고 생각합니다. Q: 설득력이 강하게 느껴지네요. 그만큼 엄청난 노력과 연구를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동문님의 궁극적인 목표도 이와 관련있을까요? 한울: 저는 국제기구에서 함양한 역량으로 국내의 국제화 역량을 증진하는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흔히 국제기구에 들어가는 재원을 보고 ‘우리나라에도 어려운 사람이 많은데 왜 생판 남을 돕냐’는 비판이 있습니다. 여기에 대부분은 국제사회 속 한국의 책임과 역할로 답합니다. 하지만 저는 국제기구에 투자되는 재원을 무비판적으로 보는게 아닌, 건전한 주장을 통해 국제기구의 필요성을 고찰하는 행위가 당연하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를 설득하는 것이 국제기구의 궁극적인 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까지는 수원국에서 공여국의 인식이 증진되고, 공여국의 수원국 진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수준입니다. 저는 더 나아가 국제기구의 지원 모델을 국내 취약계층에 맞출 수 있는 모델을 찾고자 합니다. 저는 아직도 배우는 입장이기에, 지금도 세계의 주요 동향을 살피며 제 역할을 찾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시기에 해외서 몸소 위기를 겪으며 현장을 경험했고, 디지털 전환이 이루어지는 시기 마이크로소프트(MS)의 파워바아이(Power BI)라는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데이터 시각화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한-아프리카 정상회의 시점에 세네갈로 파견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이전부터 계획했던 것은 아닙니다. 수시로 정부의 기조를 읽고, 이를 반영한 국제기구의 동향을 파악하면서 저의 역할을 찾다 보니 지금까지 온 것 같네요. 물론 안주하지 않고 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제 삶의 목표입니다. Q: 동문님의 목표를 응원하겠습니다. 이제 마무리를 지어보려 합니다. 이번 상명피플을 통해 우리 상명 구성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시다면 자유롭게 부탁드리겠습니다. 한울: 이미 다 잘하고 계실 것이라 믿기에 감히 말씀드리자면, 지금처럼 대학 생활을 알차게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살아 본 후 4학년 1학기 때 자신의 위치를 가늠하고, 다소 부족하다고 느껴지더라도 경험을 쌓으시고, 다음 기회를 노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계속 두드리기를 권면하고 싶습니다. 일단 해야 잘할 수 있습니다. 두 세 번 멈추면 네 다섯 번 다시 뛰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고 오늘 하루를 보내는 것입니다. 물론 생각만큼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상명대학교 대학일자리플러스센터에 방문하셔서 문제를 하나씩 풀어놓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국제기구, 국제개발협력, 비영리 분야에 대해 궁금증이 있으시다면 대학일자리플러스센터에서 편하게 제 연락처를 찾아 궁금한 것을 물어보셔도 됩니다.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Q: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2024학년도 8월 상명피플 인터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울: 감사합니다! 당신의 4년 전은 어땠는가? 무언가를 찾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는가, 혹은 실패 이후 마음을 다잡았는가, 아니면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는가. 어떤 일들을 했었건, 지금의 우리는 그 시절을 발판 삼아 성장한 것이다. 이 다음에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리운 얼굴을 다시 만났을 때 더 좋은 모습이 될 수 있길 상명피플과 한울 동문은 바라고 있다. 기획: 대외협력처 커뮤니케이션팀
충남지역 맛있는 사회적 가치 실현
KOICA(한국국제협력단) 리턴 프로젝트로 창업에 성공한 ㈜어밀리티는 올해로 3년째 천안시 로컬푸드 요리교실 위탁운영을 맡고 있으며, ESG 경영을 기반으로 한 ‘맛있는 사회적 가치 공유’를 모티브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주관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 11기’에 선정되기도 한 ㈜어밀리티는 글로벌 공감 쿠킹클래스 운영으로 단순한 요리 수업이 아닌 식문화 공유 및 다문화에 대한 이해와 교류의 장을 만드는 새로운 콘텐츠를 제공해 왔다. 또 2022년에는 천안문화도시 리빙랩프로젝트 어밀리티 밀키트 제로웨이스트샵을 운영하며 발생한 수익금 전액을 천안시에서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천안시복지재단 무료급식소에 기부하며 선한 영향력을 펼친 바 있다. 상명대학 국제개발평가센터 연구원으로 근무하며 ESG 경영에 대한 마인드를 견고히 하였으며, 충남지역의 ESG 가치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어밀리티 장미지 대표를 만나 근황과 포부를 들어보았다. 1.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어밀리티 대표 장미지입니다. 현재 글로벌로컬 요리교육 기획 전문 브랜드 ㈜어밀리티를 4년차 운영 중입니다. 2. ㈜어밀리티에 대한 간락한 소개와 함께 어떤 활동을 펼쳐오셨는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어밀리티는 2021년에 창업해 △요리교육사업 △F&B컨설팅 △요리콘텐츠 제작서비스를 중점적으로 수행하고 있습니다. 요리교육사업의 경우 글로벌 로컬푸드가 주요 분야이며, 프로그램 기획부터 운영까지 원솔루션으로 제공하며 ESG 경영을 기반으로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예비사회적기업입니다. 이 밖에 창업, 사회적기업 관련 강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한국관광공사에서 지원하는 지역 로컬푸드와 자원을 활용해 관광상품 개발 컨설팅을 전국적으로 수행하고 있습니다. 3. KOICA 리턴프로젝트 출범을 시작으로 2021년도 ㈜어밀리티 법인을 설립하여 사회적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 오셨습니다. 창업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2020년부터 상명대학교 국제개발평가센터에서 연구원으로 근무를 하였는데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국내에서 수행할 수 있는 국제교류 협력사업에도 관심갖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상명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인 백선욱 센터장님의 응원 속에 상명대 국제개발평가센터 전·현직 연구원들이 힘을 합쳐 국내에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 결혼 이주여성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강사양성 프로젝트인 코이카 리턴 프로젝트를 시작하였습니다. 요리 강사로 활동을 희망하는 베트남 국적의 결혼 이주여성 참가자들을 모집하여 이론 교육부터 레시피 정량화 교육 그리고 실습 교육을 약 한 달간 진행했습니다. 쿠킹 클래스를 통해 음식과 역사를 접목한 수업이 인상적이고 신뢰를 갖게 되었다는 수강생들의 소감을 접하면서 결혼 이주여성들과 함께하는 쿠킹클래스 프로젝트를 사업으로 추진하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4. 상명대 국제개발평가센터에서 근무하신 인연으로 상명인이 되셨습니다. 지금 ㈜어밀리티의 대표로서 상명대 국제개발평가센터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국제개발협력에서 성과관리는 매우 중요한 지표이며 기준입니다. 상명대 국제개발평가센터는 개발협력의 새로운 지표를 만들어 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5. 상명대학교 국제개발평가센터 연구원으로 근무하신 기간과 국제개발평가센터에서 근무하신 경험이 대표님의 경영 철학에 영향을 준 것은 무엇인가요? 국제개발평가센터는 어밀리티가 시작된 곳이기도 하고, 현재 어밀리티가 기업으로서 영업 이익 뿐만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함께 발현하는 데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저는 2020년부터 1년 3개월간 상명대학교 국제개발평가센터에서 근무하였으며, 국제개발평가센터 업무와 병행하며 창업을 준비할 수 있도록 많은 격려와 배려를 해주셨습니다. 백선욱 센터장님과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동료들과 ESG경영과 사회적 기여, 국제교류 등에 대한 가치관이 비슷했기 때문에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많아 창업 준비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6. 상명대 국제개발평가센터 동아리 써라운드와 진행한 프로젝트는 무엇인가요? 식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상호문화이해 프로젝트를 상명대 국제개발평가센터 동아리인 써라운드와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식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상호문화이해 프로젝트는 다양한 나라의 음식을 요리하고 함께 먹으며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지역 로컬에서 함께 살아가는 외국인 이주민들이 원주민들과 모여 교류할 수 있는 프로젝트로 상명대학교를 중심으로 시작해서 지역 내 다른 대학들과도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여 상호문화이해 프로젝트의 활성화를 통해 충남지역 ESG 가치 확산에 지역 청년이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7. ㈜어밀리티에서 근무하는 상명대학교 졸업생을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상명대학교 불어불문학과(현재 불어권지역학전공) 졸업생인 이시온씨가 ㈜어밀리티 대표를 2021년부터 2022년까지 역임했었고 현재는 사외이사로 재직 중에 있습니다. 또 상명대 불어불문학과 졸업생 신예인씨가 ㈜어밀리티에서 1년간 근무했습니다. 국제개발평가센터 동아리인 써라운드의 회장인 영어권지역학전공 임희수 학생과 경영공학과 최서연 학생, 글로벌금융경영학부 한금성 학생이 어밀리티 프로젝트에 많은 관심을 갖고 실제 운영 업무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8. 지금까지 지속 가능성과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하면서 많은 활동을 해오셨는데, 앞으로의 포부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향후에도 지속 가능성과 선한 영향력을 고려한 사업들을 위주로 활동 할 예정입니다. 그 안에서 글로벌 사업으로의 진출을 목표로 ICT 기술을 도입한 융합형 요리교육을 적용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는데 노력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어밀리티는 비영리적 업무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노하우와 무형적 가치를 쌓아왔습니다. 이러한 기반을 바탕으로 글로벌 요리교육사업 영역에 진출하는 것이 앞으로의 목표입니다. 9. 상명인으로써 대학의 캠퍼스를 누비며 꿈을 향한 다양한 시도를 펼치고 있는 상명인들에게 격려의 말씀 한마디 부탁드린다. 나는 어떤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이런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하는 청년들이 요새는 더 많은 것 같아요. 물론 MBTI라는 재미있는 지표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진짜 나를 알기 위해서는 새로운 경험에 투자하고 계속해서 부딪혀야 합니다. 성취감과 함께 때로는 좌절을 경험할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 역량을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한다면, 앞으로 수많은 기로에서 보다 선택에 대한 확신을 갖을 수 있을 겁니다. 무엇이든 될 수 있고 할 수 있는 상명인 여러분의 도전을 응원합니다. 파이팅!
충남지역 어르신 장수사진 봉사
우리대학 사진영상미디어전공 휴학생 7명이 모여 충청남도 공주시 봉정동 지역 어르신 31명에게 장수사진을 촬영하는 봉사활동을 펼쳐 귀감이 되고 있다. 사진영상미디어전공 휴학생들이 뜻이 모아 전공역량을 기반으로 각자의 재능을 더해 지역 어르신들에게 헤어스타일링과 메이크업까지 연출하며 어르신들의 만수무강을 위한 장수사진을 선물해 지역사회를 훈훈하게 했다. 사진영상미디어전공 학생들을 만나 충남지역 어르신들을 위한 장수사진을 촬영하게 된 계기와 휴학기간을 알차고 의미 있게 보내고 있는 모습을 살펴보았다. 1. 공주에서 전공역량을 기반으로 어르신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진행했다고 알고 있다. 이번 충남지역 어르신 장수사진 촬영에 참여한 팀은 팀명이 따로 있는지 궁금하고 참여한 친구들의 소개를 부탁한다. 또 본인이 촬영팀의 대표인지 궁금하고 만약 아니라면 누가 대표인지도 궁금하다. 상명대학교 사진영상미디어전공 학생 7명으로 이루어진 팀이다. 팀명은 '모음'이며 촬영하고자 하는 대상을기록한다는 의미의 '모으다(collect)'와 한글 모음의 선택이 단어의 의미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토대로 우리의 선택이나 촬영 방식이 대상의 의미를 특별하게 바꿀 수 있다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대표는 딱히 없다. 팀원을 소개하자면 휴학 당시 3학년이었고 김다해, 김예림, 김유진, 김현서, 박재희, 박준희, 백서진이다. 각자 잘하는 부분, 주도적으로 이끄는 부분들이 있기 마련이다. 분위기를 잘 이끄는 사람, 회의 진행을 효율적으로 하는 사람, 말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들을 알맞게 언어화 해주는 사람 등이 있기에 서로 자신 있게 해낼 수 있는 분야를 더 믿어주고 함께 하고자 하였다. 2. 모두 휴학생들이라고 들었다. 혹시 휴학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대략적으로 팀원들의 휴학 사유는 무엇이고 세부전공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다. 또 복학할 계획을 갖고 있는지, 진로희망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휴학의 이유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아마 3년 동안 자기 계발보다는 학업에만 열중했던 것이 지치고 아쉽기도 했고, 개인적인 성장에 좀 더 집중해 보고자 휴학을 결심한 거라고 생각한다. 휴학을 통해 불명확한 진로도 정해보며, 취업에 대한 진지한 고민, 인턴이나 대외활동 등의 대학생으로서 누릴 수 있는 다양한 경험도 즐겨보고 싶었다.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 대학생으로서 학교 밖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을 토대로 각자의 역량을 쌓아가고자 했다. 또 졸업을 앞두고 휴식기가 필요하다고 느끼기도 했고, 마침 다들 같은 고민을 하고 있던 시기여서 휴학을 한 이후 팀원들과 두 달에 한 번 정도는 만나서 여행을 가기도 했고,학기 중 시간이 부족하여 즐기지 못한 취미를 갖기도 했다. 그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긴 하지만 이러한 종합적 이유로 휴학을 결정하게 되었다. 팀 내에서도 저널, 예술, 광고, 영상 등 각자 선호하고 자신 있는 파트가 다양하다. 이 점을 우리의 강점이라고 생각하여 각자의 특색이 어우러질 수 있는 프로젝트를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 복학은 다음 연도에 할 예정이며, 희망하는 진로는 역시 다양하다. 콘텐츠 기획, 패션 사진, 대학원에서의공부, 기자, 사진 잡지사 등 7명 모두 저마다 다양한 관심사를 지녔기에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3. 어르신들을 위한 영정사진촬영 봉사를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학기 중에도 팀원들과 '기록적인 사진을 프로젝트식으로 이어 나가 보자, 어르신들의 장수 사진을 촬영해드리자'는 이야기를 수시로 나눴다. 마침 팀원 모두가 휴학을 한 이 시점을 기회로 장수 사진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하게 되었다. 4. 이번에 영정사진 봉사활동을 펼친 곳은 어디이며 활동한 내용을 설명해 주시기 바란다. 촬영은 충청남도 공주시 봉정동에서 3일 동안 진행되었다. 봉정동에 거주하는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총 17가구 31명 어른신들을 촬영하였다. 장수 사진의 경우 기존의 형식과는 달리 흰색 천과 어르신들께서 사용하시는 이불을 배경으로 각자 좋아하시는 옷을 착용한 상태에서 촬영을 진행하였다. '모음 집' 프로젝트의 경우 대상의 집을 배경으로 한 장, 사용하시는 이불을 배경으로 한 장 촬영한다. 촬영 현장은 모두 영상으로도 기록하였고 추가로 인터뷰를 가졌다. 이를 통해 어르신들 개개인만의 개성과 삶을 담고자 하였다. 촬영한 사진들은 액자와 도록으로 제작하여 전달해 드릴 예정이다. 이처럼 장수 사진 촬영 봉사활동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삶의 공간과 특색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5. 공주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한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 우리의 첫 프로젝트이기에 팀원들에게도 의미가 있는 장소로 선정하고자 하였다. 또한 우리 주변, 혹은 익숙한 동네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회의를 통해 팀 구성원이 실제로 태어나고 자란, 지금도 거주하고 있는 동네로 선정하게 되었다. 그곳이 충청남도 공주시 봉정동이다. 6. 봉사활동을 진행하면서 어려운 점은 무엇이 있었는가. 처음이다 보니 미숙한 점이 있었는데, 촬영을 위해 여러 집을 방문하면서 이동 시간이나 촬영 시간이 지체되는 경우가 있었다. 또한 이동비, 장비 대여비, 소품비 등을 팀원들 사비로 진행하여 적지 않은 지출이 있었다. 7. 봉사활동을 진행하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2~3가지 소개 바란다. 방문하는 집마다 환하게 맞아주시고 챙겨주려는 마음이 느껴지는 정이 가득한 봉정마을이 인상적이었다. 비타민 음료와 과일을 주시거나 보리수 가지를 꺾어 건네주시는 분도 계셨다. 그중에서도 더운 날 커피라도 마시고 쉬고 가라며 뜨거운 커피 믹스 7잔을 타 주신 한 어르신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또 봉정동 관할행정복지센터에서도 우리의 활동에 관심을 가져주셨고, 촬영 마지막 날에는 동장님과의 식사 자리까지 자리를 마련해 주셨다. 이동은 팀원들의 차량 두 대를 이용했는데,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차주의 심경에 따르면 정말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프로젝트 발전을 위한 액땜이라고 말했다. 8. 영정사진 촬영 봉사활동과 관련해서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 현재 하반기에 두 번의 작업을 계획 중이다. 이번 공주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재개발 예정인 지역 등 국내 여러 곳에서 각자의 삶의 공간과 추억을 함께 기록하는 촬영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번 활동은 봉사활동이기도 하지만 예술을 탐구하고 사진을 전공하는 전공생으로서 사진을 통해 당시 기억을 떠올릴 수 있도록 하는 우리의 메시지를 작업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가 있다. 나아가 팀원들과 한국에서의 많은 작업을 하고 기회가 된다면 그 경험들을 통해 해외의 낙후된 지역 등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우리 팀, 모음이 세계적으로 활동하기를 바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9. 봉사활동을 하며 느낀 점이 있다면 간략히 소개 바란다. 사진을 통해 누군가의 삶과 이야기를 기록하고, 기억하고, 전한다는 것에 대한 무게감, 책임감, 영향력을 느꼈다. 지금껏 과제를 위한 촬영을 주로 하다가 누군가의 삶에 밀접한 사진을 찍음으로써 사진을 찍고 기록하는 것에 얼마나 중요한 지에 대해 더욱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어르신들께서 알고 계셨던 장수 사진 촬영 방식과 다른 느낌이어서 어색하실 수 있음에도 학생들의 요청에 흔쾌히 응해 주신 것에 큰 감사를 표한다. 한 팀원의 경우 봉정동은 어릴 때부터 계속 살아왔던 동네이지만 어르신들과의 교류가 적었는데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동네의 많은 어르신들을 만나 뵙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뜻 깊은 경험이 되었다고 전했다. 그 외에도 사전 답사 때 방문했던 식당 사장님과의 인연, 친구 집에서 7명 다 같이 지내고 자는 귀한 경험들 등등 지금이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10. 교내에도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치는 상명소셜임팩트센터가 있다. 봉사에 대한 생각은 있지만 망설이고 있는 학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 '봉사'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본인이 가진 재능을 통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것도 봉사가 된다고 생각한다. 봉사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지만, 활동을 하며 얻게 되는 감정과 경험 그리고 깨달음은 본인을 더욱 성장시킬 것이라고 확신한다. 또한 각자가 가진 재능을 살려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것은 큰 뿌듯함을 안겨준다.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활동 하나라도 망설이기보다는 실행하고 참여하는 용기를 통해서 의미 있는 경험을 남길 수 있도록 무엇이든 시작해 보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
스뮤즈에게 'Am I Psycho?'라고 물어보았다.
스뮤즈를 아시나요? 지난 10월, 뮤직테크놀로지학과 학생들의 프로젝트팀인 ‘스뮤즈 (SMUZ)’의 첫 디지털 싱글 ‘스뮤든다’가 발표되면서 학내외적으로 많은 주목을 이끌었다. 학생들의 세부 전공에 따라 작곡, 작사, 편곡, 보컬, 연주, 믹싱, 음향 등등 모든 부분을 관리한 것은 물론, 캠퍼스 곳곳을 배경으로 촬영한 뮤직비디오까지 상명의 색을 그대로 담은 음악은 그들의 다음 프로젝트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올해 5월, 스뮤즈 프로젝트의 두 번째 싱글 ‘Am I Psycho?’가 발매되었다. 이번 곡은 남녀 관계에 대한 다소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내용을 담은 곡으로, 이번 역시 학생들이 음악 총괄을 담당하는 등 각자의 음악적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였다. 다양한 개성을 가진 학생들의 소리를 아름다운 하모니로 만들어 낸 모습을 보며 ‘스뮤즈는 어떤 그룹일까?’라는 궁금증이 생겼고, 마침 이 의문을 해소시켜줄 스뮤즈 프로젝트의 프로듀서인 송승욱 학우(뮤직테크놀로지학과 석사과정생)를 만나볼 수 있었다. 송승욱 학우는 ‘The Z’, ‘Veloce’ 라는 예명으로 20년 이상 활동한 DJ이자 프로듀서로, 정규 1집 ‘Funk Without Score’로 평단의 호평을 받았으며 ‘절충 프로젝트’ 및 가리온, Virus, DJ Skip 와의 협업 등 한국 힙합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긴 음악인이다. 이런 그가 스뮤즈 프로젝트에 참여한 이유부터, 스뮤즈 프로젝트는 무엇인지, 또 이번 싱글은 어떤 곡인지, 또 앞으로 어떤 행보를 걸을지 하나하나 가져왔다. 다소 유쾌하게 진행되었던 이번 인터뷰, 재생 버튼을 눌러주기 바란다. 그렇게 스뮤즈에게 ‘Am I Psycho?’라고 물어보았다. Q: 안녕하세요. 상명대학교 커뮤니케이션팀입니다. 이번 상명피플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 시작에 앞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송승욱 학우 (이하 ‘The Z’): 안녕하세요. 저는 상명대학교 문화기술대학원 뮤직테크놀로지학과 석사과정생 송승욱입니다. ‘The Z’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 유튜브 채널 ‘쇼디 Show Discjockey’ 채널을 운영 중이고, 제 개인 레이블인 ‘엔스타 레코드’도 하고 있습니다. 이것저것 하다 보니까 벌써 마지막 학기네요. 시간이 야속해요 정말. 제 활동에 대해 간략히 이야기하자면, 2005년도에 나온 제 1집 ‘Funk Without Score’가 꽤 괜찮은 평가를 받았던 앨범이에요. 가리온 1집에도 참여했었고요. 사실 이것저것 꽤 활동했지만 이걸 각 잡고 정리하기가 어렵더라고요. 교수님이 ‘프로필은 거꾸로 쓰는거다.’라고 하셨는데, 손댈 엄두가 안나네요. Q: 사실 인터뷰 준비하면서 좀 놀랐습니다. 개인적으로 2000년대 한국 힙합에 대한 일종의 동경심이 있어서, 지금도 쉴 때마다 그 시절 음악을 듣는데요. 섭외 연락 드린 뒤 이그니토의 ‘비관론’을 틀었는데 방금 본 이름이 지나가더라고요. ‘어? 잠깐만 이 사람?’ 이어폰에선 한참 DJ 스크래치가 나오는데 ‘이 사람이 스뮤즈라고?’ 그런데 오늘 실제로 뵈니까 참 사람 일이란게 모르겠네요. 정말 오랜 기간 활동하신거로 기억하는데, 상명대 대학원에 진학하신 것도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The Z: 일단 알아봐주셔서 너무 감사하고요. 나름 열심히 활동하길 잘했다 생각이 드네요. 제가 상명대 입학 전에 IKAC(한국예술원)라는 곳에 ‘뮤직프로덕션 힙합전공’ 출강을 했었어요. 제가 힙합씬에 20년 가량 몸담으면서 얻은 노하우나 경험을 학생들에게 알려주는데 이게 굉장히 재밌었어요. 음악 시장에 안착하기 위해 노력하는 학생들을 보니까 흐뭇한 마음도 들고, 또 저도 더 정진해야겠다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좀 더 배워보잔 생각에 대학원 진학을 계획했죠. 그래서 여러 선택지를 알아보던 중에, 상명대가 문화 예술 분야에서 상당한 입지를 차지하고 있더라고요. 교수님들도 상당한 경력을 가지고 계셨고, 또 업계에서 인정받는 분들이 많으셔서 제가 얻어갈 게 많아 보였어요.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게, 집에서 가깝더라고요. 연신내에서 금방 와요. 학교가 산 중턱에 있는건 조금 힘들긴 한데, 제가 다녔던 학교들이 전부 언덕에 있어서 익숙해요. Q: 지속적인 배움에는 큰 동기부여가 필요한데, 꽤 흥미로운 이유네요. The Z: 사실은 전부터 세워둔 목표가 있어요. 이게 제 음악적 방향성과도 연결된 이야기인데요. 이 부분은 스뮤즈 이야기 후에 차차 말씀드릴게요. Q: 기대해보겠습니다. 약간 쉬어가는 차원에서, 등교 때 언덕을 자주 걸어 오르신다던데 사실인가요? The Z: 거의 매일 걸어 올라와요. 하체 운동 생각하면서. 인터뷰 끝나고 논문 일정이 있어서 가봐야하는데, 인터뷰하면서 살짝 숨 좀 돌리고 있습니다. Q: 굉장히 힙합이네요. 또 그만큼 열정이 있으니까 꾸준한 활동이 가능하단 생각이 듭니다. 이 열정 그대로 다음 질문으로 가보겠습니다. 이번 인터뷰의 큰 주제가 ‘스뮤즈’인데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도 스뮤즈의 음악을 활용한 챌린지를 진행했을 정도로 학생들에게 관심도가 높습니다. ‘스뮤즈’는 어떤 그룹인지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The Z: 우선 뮤직테크놀로지학과에는 크게 세 개의 전공이 있어요. 뮤직프로덕션과 뮤직퍼포먼스, 그리고 오디오테크놀로지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이해하기 쉽게 하자면, 각각 음악을 기획하고, 음악을 연출하고, 음향의 전반적인 부분을 담당합니다. 이 세 파트가 모여 하나의 곡을 만들어내는거죠. 그래서 학생들이 모여 곡을 만드는게 큰 모토이고요. 더욱이 동문들과 같이 작업하면서 하나의 커뮤니케이션을 구축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Q: 흔히 말하는 ‘팀플’의 연장선이군요. The Z: 그렇죠. 그렇게 이해하시면 빨라요. 조금 더 보태면, 일종의 컴페티션(competition-경쟁)이에요. Q: 경쟁이라 하면... The Z: ‘Am I Psycho?’ 발매랑도 연결되어 있는데요. 정재윤 교수님의 ‘싱어송라이팅’이라는 수업이 있어요. 여기서 팀을 짜서 직접 곡을 쓰고 수업 내에서 경쟁하는 시스템인데요. 감사하게도 저희 팀이 우승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이승연 교수님께서 ‘이거 스뮤즈로 발매해보자’고 연락을 주셨습니다. 처음 작업할 때부터 이 곡은 발매하자는 생각으로 작업을 했었는데, 또 연이 닿게 되어 스뮤즈 명의로 발매하게 되었죠. Q: 흥미진진한 이야기네요. 예전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스뮤즈 프로젝트로 발매된 음악들이 이런 과정을 거쳐 나왔다는게 믿고 듣는 이미지를 구축한거 같습니다. 스뮤즈 프로젝트의 두 번째 곡인 ‘Am I Psycho?’에 대한 소개도 안들어볼 수 없겠네요. The Z: ‘Am I Psycho?’는 저를 포함해 4명의 멤버가 참여한 트랙인데요, 장르적으로는 트랩 기반의 R&B 곡입니다. 주제는 보편적인 ‘사랑’이야기이지만, 또 보편적이지 않은, 파격적인 내용을 담아보았어요. 저는 이 곡에서 작사, 작곡, 편곡을 포함해 총괄 프로듀싱을 담당하였고, 나머지 세 명의 멤버가 보컬을 담당하였는데요. 두 명의 여성 보컬과 한 명의 남성 보컬을 어떻게 녹여낼까 하다가, 이 구성 자체가 흔치 않다 생각해서 ‘여자는 verse, 남자는 hook’ 구성을 짜보았어요. 노래 주제가 주제인 만큼, 신선하게 접근하는 것이 곡의 완성도를 높여줄 것이라 판단했고요. Q: 처음 발매되었던 ‘스뮤들다’와 비교했을 때, 이번 곡은 좀 더 팀원들의 역량에 초점이 맞춰져있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이전까지 The Z님이 작업하셨던 음악들에서 느껴졌던 색들이 조금씩 느껴졌었는데요. 혹시 이번 작업에서도 그런 본인의 색깔을 담아내는 것이나 그런 부분을 염두에 두셨나요? The Z: 사실 프로듀싱은 프로듀서의 색깔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건 곡의 메인이 되는 보컬라인을 어떻게 부각시키느냐와 곡을 어떻게 이끌어 나가느냐라 생각해요. 드래곤볼에서 나메크 성 장로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그 사람의 잠재 능력이 팟! 하고 올라가잖아요? 저는 그런 역할을 하고 싶었어요. 저는 작업할 때 최대한 프리하게 하자 주의거든요. 적절한 자유는 부담감도 줄여주고 결과적으로 역량을 이끌어낸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일단 해보자’, ‘마무리는 내가 할 테니 하고 싶은 대로 하자’ 느낌으로 작업을 했었어요. 물론 그 친구들도 대부분 경험이 풍부해서 역량이 잘 발휘되었던 것 같고요. 결과적으로 기억에 남을 정도로 재밌던 작업이었습니다. Q: 자율적인 작업방식 속에서 가창자의 역량을 끌어내는게 프로듀서의 진정한 역할이군요. The Z: 맞아요. 활동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제 소신이고, 서로의 역량을 믿어야 시너지가 나온다 생각해요. Q: 혹시 다른 팀원분들도 실제로 가수 활동을 하고 계신가요? The Z: 일단 남자 보컬 이름은 ‘정승우’고요, 학부 졸업 후 바로 대학원으로 진학한 케이스라 외부 활동 경험이 엄청 많은 편은 아니었어요. 그럼에도 그 친구가 가지고 있는 역량이나 잠재성이 뛰어나서 믿고 맡길 수 있었어요. 여자 보컬 중 ‘육서인’이란 친구는 실제로 활동 중인 가수에요. 웅산 교수님의 백보컬로도 활동했었고, 또 시인으로도 활동 중이에요. 방송 활동이나 공연 경험도 대단히 많고요. 그래서 약간 스포일러긴 한데요. 제가 운영 중인 엔터테이먼트와 계약 등의 방향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른 친구도 가수로 활동 중인데요. ‘이그림’이라는 친구에요. 저저번주에 싱글이 나왔는데, 노래가 좋으니 꼭 한 번 들어봐주세요. ‘이그림’이에요. https://youtu.be/WNm9sJci8Fg?feature=shared Q: 참여진이 화려하네요. 홍보도 꼭 해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들어보니 곡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흥미로운게 많을거 같아요. The Z: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모든 작업의 끝은 발매라 생각하고 임하는 편이에요. 이 곡도 마찬가지였고. 그래서 음원 발매와 유통도 제가 이전부터 같이 일해오던 곳에 부탁했어요. 그런데 불현듯 음반 심의가 생각난 거예요. 뉘앙스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단어가 하나 있던 거죠. 사실 별거 아니라면 아닌 건데, 저뿐만 아니라 팀원들이 학교에서 모든 걸 작업한 다음 스뮤즈로 나온 곡이잖아요? 이왕 발매한 거 라디오에도 나오고, 어디 방송이라도 타면 좋으니까요. 그 단어 하나로 ‘심의에 걸린 곡’이란 딱지를 붙이고 싶진 않았어요. 그래서 발매 전에 기존 녹음본은 Dirty ver.으로 만들고, 가사를 약간 수정한 Clean ver.를 만들어서 정식 발매는 Clean ver.로 하게 되었습니다. Q: 예전에 여러 음악인들이 Clean ver.를 만들어 방송 활동 하던게 생각나네요. 사실 최고의 홍보는 미디어 노출이니까요. 거기에 뮤직비디오도 홍보에 필수적인 역할이라 생각하는데요, 뮤직비디오도 특별한 이야기가 있을까요? The Z: 보신 분들은 눈치채셨을 텐데요, 뮤직비디오를 상명아트센터 계당홀에서 촬영했어요. 이제 음악을 만들고 뮤직비디오 이미지를 구상하는데, 마이클 잭슨의 ‘You’re Not Alone’이 떠오르더라고요. 어두운 무대 위 조명이 가수를 비추고, 백그라운드에는 텅 빈 관객석이 놓여진 그림이 저희 곡 이미지와 부합한다 느꼈어요. 그래서 이 느낌을 가져가고 싶었고, 여기에 맞춰서 촬영 장소를 찾았어요. 레퍼런스이자 일종의 리스펙을 담은거죠. 그런데 생각보다 섭외에 어려움이 있었어요. 만족스러운 그림이 잘 안나오더라고요. 그 때 ‘스뮤즈로 나올 음악인 만큼, 학교에서 촬영한다면 의미가 있을 것 같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기다가 계당홀의 규모나 구조가 저희 그림과도 딱 맞았고요. 감사하게도 흔쾌히 촬영에 협조를 해주셔서 무사히 제작할 수 있었네요. 그 때가 1-2월 초여서 굉장히 추운 날씨였는데도, 난방이나 여러 방면으로 많이 챙겨주셔서 지금도 감사한 마음입니다. Q: 뭔가 익숙한 곳이라 생각했는데 이런 이야기가 있었네요. The Z: 거의 모든 걸 학교 내에서 해결했어요. 저기 T관에 뮤직테크놀로지 방이 있는데요, 거기에 녹음 시설이나 이런게 다 있습니다. 음원 발매나 유통 등 외부 전문업체가 필요한 부분 빼곤 여기서 모든 게 만들어졌습니다. Q: 어떻게 본다면 학교가 하나의 레이블 역할을 하는거 같아요. The Z: 실력 있는 친구들도 있고, 저뿐만 아니라 현역으로 활동 중인 분들도 계신 만큼 제대로 보여주고 싶단 생각이었어요. 대학원에서 배우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야 대중들을 설득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 지원받는 만큼 모두 열심히 하고 있고, 그래서 그런 느낌을 받으신 게 아닐지 싶어요. ‘스뮤든다’ 전부터 정말 노력했고, 그 후에도 계속 더 노력하고 있어요. Q: 모든 분야가 그렇겠지만, 특히 예술 분야는 실력과 함께 대중, 수요층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연구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문득 ‘스뮤든다’가 스뮤즈 활동에 있어 일종의 터닝 포인트라 느껴지네요. 사실 ‘스뮤즈 프로젝트’의 첫 번째 곡이기도 하고, 신입생 OT 등에서도 활용되면서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던게 아닐까 싶어요. 스뮤든다에도 참여하신 거로 알고 있는데 당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을까요? The Z: ‘스뮤든다’도 참 스토리가 많죠. 첫 프로젝트였던 만큼, 최대한 많은 구성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곡을 구성해야 했어요. 그때 메인 프로듀서로 박정현 교수님이 참여하셨는데요, 여담이지만 그때는 대학원생이셨고, 저와도 연배나 경력이 엇비슷하신지라 사적으로는 호형호제하는 사이에요. 여하튼 교수님과 지금은 졸업한 학우들도 마지막으로 학교에서 하는 프로젝트인 만큼 열정적으로 임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직접 베이스, 드럼 등등 모든 부분을 연주로 채워넣었어요. 저는 힙합 파트에서 드럼과 스크래치, 그리고 작사에 참여했었습니다. 거의 30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하다보니 자칫 난잡해지지 않을까 걱정도 있었는데, 교수님께서 또 알맞게 어레인지를 해주셔서 좋은 결과물이 나왔네요. 이번에 축제 때도 응원단분들이 스뮤든다로 안무를 해주셨다고 했는데, 정말 감사한 일이죠. 저도 많은 부분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Q: 많은 인원들이 참여하는 만큼 다양한 사운드가 나오기도 하지만, 또 그걸 얼마나 잘 조율하느냐도 정말 중요한 일 같습니다. 음악도 그렇듯 삶의 목표 역시도 다양한 방향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The Z 님의 삶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The Z: 지금 논문 마감 중이라 마무리되는 대로 졸업 예정인데요.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제가 출강을 다니면서 교육자라는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교육자의 길을 걷는 것이 목표고요. 한단계 나아가서는 제가 꾸리고 있는 레이블을 크게 키우고, 나아가 하나의 크리에이터 집단을 구축하는게 꿈이에요. Q: 크리에이터 집단이란 말이 흥미롭네요. 지금까지 활동하셨던 것들, 그리고 기존의 레이블과 차이점이 있을까요? The Z: 저는 꼭 음악이 아닌, 예술이나 콘텐츠까지 아우르고 싶어요. 제가 활동해 온 장르는 힙합인데요. 20년 넘게 활동하다 보니까 시야가 넓어진다 해야할까요? 제게 힙합이 중요한 가치를 가진 것처럼, 누군가에겐 락이 가치 있는 장르고, 또 누군가에겐 트로트가 가치 있는 장르란 생각이 들었어요. 논문 지도를 받으면서 미시적, 거시적 관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점점 음악을 바라보는 태도가 거시적으로 바뀌었습니다. 힙합도 음악의 한 장르고, 음악도 예술의 한 장르인 만큼 모든 것을 예술로 승화하면 더 좋은 그림이 나올 거란 생각합니다. 지금 입은 ‘키스 해링’ 티도 제가 정말 좋아하는데, 이게 음악이 아니라고 ‘뭐야 이거’ 할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큰 의미의 예술, 나아가 문화를 다루는 이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는 곳을 크리에이터 집단이라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Q: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라 해야 할까요? 오랜 기간 활동하신 만큼 음악을 보는 시야가 다르다는게 느껴집니다. The Z: 제가 생각하는 제 모습은 딱 두 가지에요. DJ와 제작자. DJ는 스테이지 뒤에서 가수들이 빛날 수 있도록 음악을 튜닝해주는 포지션이고, 제작자는 무언가를 기획하고 키워내는 사람이잖아요? 어떻게 본다면 비슷한 결인거죠. 제 성향인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역량과 확장성, 가능성을 키워낼 수 있는 사람이 되는게 제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Q: 사회에 먼저 발을 내딛은 선배로서, 또 같은 학우이자 동문으로서 정말 배울 점이 많은 이야기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상명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실까요? The Z: 인생의 모토는 성장이라 생각해요. 삶을 살아가다 보면 즐거운 시간도 있지만, 힘든 과정도 분명 찾아오잖아요? 그럼에도, 적어도 제 경험으로는 고난을 넘어가다 보면 큰 결실이 나타나더라고요. 정주영 회장님도 ‘고난은 있어도 시련은 없다.’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셨는데, 언젠가 상명인 분들도 잠시만 힘든 시기를 지난다면, 분명 목표에 한층 더 가까워질 수 있을거라 믿습니다. 저 역시도 스뮤즈 활동을 통해서 본격적인 초석을 다졌다 생각해요. 또 다음에 이어질 스뮤즈 프로젝트도 언제나처럼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Q: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2024학년도 6월 상명피플 인터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The Z: 감사합니다! https://youtu.be/tAD-lDeA0QM?feature=shared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음악,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음악, 누군가에게 새로운 경험을 주는 음악. 그 이면에는 창작의 땀이 배어있다. 3-4분 남짓한 짧은 시간, 듣는 이를 즐겁게 만들기 위해 오늘도 스뮤즈는 노래하고 있다. 스뮤즈의 음악처럼, 우리 상명인들의 노력 끝에는 좋은 결실이 맺길 바란다. 기획: 대외협력처 커뮤니케이션팀
역사학자에게 ‘미래’를 물어보았다.
역사(歷史): 인류 사회의 변천과 흥망의 과정. 또는 그 기록. 동굴에 물고기 그림을 새겼던 먼 옛날부터, 우리는 발자취를 기록하였다. 오늘의 사냥감, 날씨, 다른 부족과의 교류부터 시작해 정치, 제사, 전쟁, 사회, 문화 등 인류의 전역적 기록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역사는 또 다른 ‘빅데이터’이다. 수천 년 이상 쌓여온 흔적은 힘차게 내딛는 원동력이 된다. 그렇기에 역사는 그 무엇보다 미래지향적이다.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상명인들에게 있어 역사는 중요한 원동력이자 소양 중 하나이다. 발전하는 상명의 역사와 더 나은 미래를 알아보기 위해, 상명피플은 저명한 역사학자이자 상명대학교 인문콘텐츠학부 역사콘텐츠전공 교수로 재직 중인 류한수 교수를 만나보았다. 류한수 교수는 국내 서양사학계에서 손꼽히는 전문가이자 학자로 2007년부터 수많은 상명인들을 위해 역사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학생들의 인문학적 소양은 물론, 학문적 성취를 위해 힘써온 류한수 교수는 ‘교양교육 분야 최우수 교육자상’, ‘논문저서 KCI분야 우수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최근에는 tvN ‘벌거벗은 세계사’, KBS ‘역사저널 그날’ 등 대중매체를 통해 역사를 널리 알리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상명인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렇게 역사학자에게 ‘미래’를 물어보았다. Q: 안녕하세요. 상명대학교 커뮤니케이션팀입니다. 이번 상명피플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 시작에 앞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류한수 교수 (이하 ‘류한수): 안녕하세요. 저는 상명대학교 인문콘텐츠학부 역사콘텐츠전공 류한수 교수입니다. 저는 2007년부터 상명대학교에서 교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제가 부임할 당시에는 역사학과였고, 그 이후 역사콘텐츠학과, 역사콘텐츠전공 등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요. 제 세부전공은 서양사(러시아)학으로 현재까지 서양사 교과목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Q: 소개 감사합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류한수 교수님께서는 서양사와 관련하여 국내에서는 손꼽히는 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다양한 교양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등 인문학 보급에 힘쓰고 계십니다. 오늘도 좋은 이야기 기대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역사의 중요성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한다 생각하는데요, 이 역사학을 전공하시게 된 배경이 있으실까요? 류한수: 국민학교 시절 이야기인데요, 우리가 어릴 때 장래희망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잖아요? 사실 저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어요. 그 중 천문학이나 생물학에 관심이 많았었습니다. 그런데 자연과학 분야를 전공하려면 고등학교 때 이과를 선택해야 했는데, 제가 어학 쪽에는 강했던 대신 수학에 조금 약했습니다. 그래서 이과를 가게되면 ’수학 때문에 어렵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문과를 선택하게 되었죠. 그러면서 문과에서 흥미로운 분야가 어떤게 있을까 고민하던 중, 역사 과목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습니다. 역사를 탐구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료를 찾아봐야하고, 그래서 다양한 언어에 능통해야 합니다. 그 과정이 저에게는 즐겁게 느껴졌고 나아가 역사를 전공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국내 역사학은 크게 3개의 체계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한국사와 동양사, 서양사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어떤 분야를 전공할까 고민을 많이 했죠. 그런데 한국사 같은 경우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고, 또 연구가 진행되고 있어 제가 파고들 여지가 없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동양사는 대부분 중국사와 관련된 연구일텐데, 한자 공부가 거의 필수였습니다. 그게 어린 나이에는 조금 부담이 되었다 할까요? 그래서 서양사로 눈을 돌리게 되었는데, 제가 영어나 독어, 불어에 관심이 많아서 좋은 시너지를 만들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서양사학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Q: 많은 학생들이 공감할만한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저 역시도 학창 시절 전공과 관련된 고민을 했었기에 와닿네요. 조금 더 나아가서, 서양사 역시 굉장히 범위가 넓을 것 같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어떤 분야를 세부전공하셨나요? 류한수: 보통 역사는 시대별로 구분이 됩니다. 고대사, 중세사, 근대사, 현대사 등으로 나눌 수 있죠. 거기에 지역별로도 구분이 가능하여 굉장히 세부적으로 접근이 가능한 분야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이제 85학번인데요. 그 시절에는 학생운동이나 사회운동이 굉장히 활발했습니다. 따라서 과거 타 국가의 사례 역시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요, 특히 동구권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컸습니다. 당시 냉전 시기로 인해 정보 접근이 제한되다 보니까 더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고요. 특히 20세기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인 ’러시아 혁명‘이 저에겐 가장 큰 호기심으로 다가왔습니다. 삼국지만큼 많은 인물들이 나오고, 이합집산이 이루어지는 측면이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러시아라는 국가에도 관심이 가게 되었고, 또 마침 러시아사 전공 교수님이 계셨습니다. 주변의 러시아사에 관심있는 학우들도 있었고요. 그러다 보니 학문에 더 매진할 수 있었고 대학원까지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Q: 학문에 흥미를 가지고, 또 뜻이 있어 학업을 이어나갔다는 것이 굉장히 뜻깊은 것 같습니다. 류한수: 제 배경과 성향도 큰 영향을 준 것 같아요. 제 선친께서 사업을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아버지가 사업하시는 모습을 보며 자라왔는데, 당시의 저는 ’나는 사업하고 어울리지 않는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업에서 요구하는 자질들, 이를테면 판단력과 과감함, 결단력, 집요함 등의 요소가 제 강점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느꼈습니다. 오히려 저는 학문을 탐구하고, 책을 탐독하며 지식을 쌓아가는 것이 체질에 맞았고요. 또 저에게 동생이 있는데, 동생이 가업을 물려받고 저는 연구를 이어갈 수 있는 환경도 마련되어서 대학원을 진학하게 되었고, 또 박사 과정까지 마칠 수 있었습니다. Q: 어떻게 보면 본인의 성향과 강점을 파악하는 것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또 다른 사례가 아닐까 싶습니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마음가짐을 상명 가족들이 모두 가져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교수님은 2007년 상명대학교에 부임하셨는데, 상명대 임용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류한수: 제가 2005년까지 영국에서 유학 생활을 했습니다.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대학에 시간강사로 출강하는 생활을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2007년 당시 상명대학교 역사학과에서 서양사 전공 교수 임용 공고가 올라왔습니다. 대부분의 학교가 그럴테지만, 교수 임용의 경쟁률이 상당히 치열합니다. 제가 지원했을 때 약 30명의 선생님들이 지원하셨고, 저 역시 지원을 하였는데 감사하게도 제가 임용이 되었습니다. 사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이야기고요, 제 개인적으로는 상명과 상당한 인연이 있습니다. 예전에 상명학원에서 운영하던 부속초등학교 외에 삼각지 쪽에 상명초등학교가 있었는데요, 제가 상명초등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제 여동생 역시 상명여중과 여고를 나왔고요. 또 제 배우자가 상명여대 교육학과 출신입니다. 상당히 신기한 우연이죠. 조금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운명이라 할 수 있겠네요. 그래서 상명대에 지원했을 때, 교수가 되고자 했던 간절함과 함께 나와 인연이 깊은 상명과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그런 간절한 염원이 이루어져 지금의 제가 있는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Q: 굉장히 신기한 일이네요. 상명의 연결고리가 하나로 이어지는 듯한 느낌입니다. 교수님의 마음이 학생들에게도 많이 다가갔을 거라 생각됩니다. 실제로 ’교양과목 최우수 교육자상‘ 수상 등에서 알 수 있듯 항상 높은 수준의 강의를 학생들에게 제공해주시는 것으로 유명하신데요, 교수님의 강의에 대한 철학과 이에 관한 에피소드가 궁금합니다. 류한수: 제가 처음 상명대에 왔을 때,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세계사 전공 과목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세계사 교양 강의를 진행해달라는 의뢰를 받게 되었는데요, 제가 강사 시절에도 이와 비슷한 과목을 진행하였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때 경험을 되살리면서, 더 보완하고 응용해 좋은 강의를 만들어보자 생각했죠. 그렇게 해서 개설한 교양 교과목이 ‘기초 세계사’입니다. 아마 학교를 오래 다녔던 학생들에게는 ‘교양 세계사’라는 과목으로 익숙할 것입니다. 이 과목을 설계하면서, 사실은 굉장히 고민이 많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다 싶이, 역사는 인과의 학문인데요. 이 인과관계는 수 십, 수 백년 이상의 경험이 누적되어 발생하게 됩니다. 그래서 다소 긴 호흡을 가지고 분석해야합니다. 그런데, 교양 교과목은 한 학기안에 이 이야기들을 다 다루어야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시대를 나눠 이야기하기 보단, 특정한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흥미로울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경제에 초첨을 맞춘 경제사라던가, 예술에 초점을 맞춘 예술사 등 다양한 주제를 고민했었는데요, 저는 전쟁과 관련된 역사를 다뤄보고자 했습니다. 전쟁은 그 시대의 가장 큰 사건이라 볼 수 있는데요, 이를 통해 사회상의 변화와 사람들의 인식 변화를 명확히 추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이야기가 설명이 되는 것이죠. 더군다나 한정된 시간 안에 정보를 전달해야하는 교양 과목 특성과도 부합하고요. 상당히 고심을 하며 수업을 계획하였는데, 다행히 학생들이 흥미롭게 받아들여준 것 같습니다. 대형 강의로 100여명의 학생들이 수강하게 되었는데, 역사라는 과목의 특성과 전쟁사라는 특수성으로 많은 학생들이 수강신청을 해주었고, 그 덕에 지금까지 정원을 모두 채워 강의를 할 수 있었습니다. Q: 학부생 시절 수강신청할 때마다 항상 교양 세계사는 인원초과 였던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이면에는 더 좋은 강의를 만들기 위한 교수님의 열정이 담겨 있었단 걸 또 한 번 느낍니다. 교수님께서는 수십 년간 상명의 강단에서 많은 강의를 해오셨는데요, 최근에는 방송 및 유튜브 등 다양한 매체에서 강연하여 상명의 이름을 널리 알리고 계십니다. 혹시 방송 출연에 대한 특별한 동기가 있으신가요? 류한수: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여러 프로그램에 교수들이 출연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잖아요? 방송 관련 활동을 하지 않을 때는 방송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던 편이에요. 도리어 일종의 선입견이 있었는데요, 교수는 학자인 만큼 학문 연구에 굉장히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래서 ‘방송에 활발히 출연하는 교수들은 본인 연구에 소홀하지 않을까?’라는 우려 섞인 편견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이전 방송가의 트렌드 중 하나가 ‘한국사’였는데요, 그러다 보니 방송가와 연이 닿을 기회가 크게 없었습니다. 제 분야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다큐멘터리, 혹은 라디오 등에 게스트나 자문 등의 형태로만 드문드문 출연하는 정도였죠. 그러다가 최근 4-5년 전부터 교양 방송계의 흐름이 한국사에서 세계사로 확대되었습니다. 추측을 하자면, 글로벌 시대에 접어들면서 세계사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그만큼 증가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콘텐츠의 다양화를 위해서 세계사를 새로운 타겟으로 잡은 것이라 생각되고요. 이런 흐름 속에 KBS의 ‘역사저널 그날’이 한국사 뿐만 아니라 외국사를 다루기 시작했고, 또 많은 분들이 아시는 tvN의 ‘벌거벗은 세계사’라는 프로그램이 론칭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유럽사, 나아가 세계사에 대한 수요가 증가되면서 각 국가별 역사학 전문가들이 방송에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는 저와 친분이 있었던 선배도 계셨고요. 그 선배는 프랑스사를 전공했었는데, ‘벌거벗은 세계사’ 프랑스편에 출연하여 방송계 인물들과 교류가 있었더라고요. 그러다 언젠가 러시아 관련 내용을 주제로 잡은 회차가 있었는데, 해당 회차에 출연할만한 연구자를 수소문했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선배가 방송사에 ‘상명대학교에 류한수 교수가 러시아사를 전공하였다. 그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고 이야기해주었고, 그렇게 벌거벗은 세계사에 출연 섭외를 받게 되었습니다. 사실 고민이 많았어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방송을 준비하는데 있어 우려도 있었고, 또 저명한 방송에 나가서 강연을 한다는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그런데 출연했던 선배의 강력한 추천도 있었고, 또 제 전문 분야다 보니 ‘해볼 만하지 않을까?’ 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죠. 그렇게 벌거벗은 세계사에 출연하게 되었고, 또 그게 도미노처럼 출연 섭외가 이어지더라고요. KBS의 ‘역사저널 그날’과 같은 지상파 프로그램에서도 섭외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개인적인 인지도가 올라가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제가 소속되어있는 ‘상명’의 이름이 방송에 계속 나오게 되고, 또 그것이 상명을 널리 알리는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 뿌듯한 기분입니다. Q: 저도 방송에서 교수님을 뵈게 되어 정말 반가웠습니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유명하셨던 교수님이지만, 이제는 다양한 매체에서 활동하시는 모습을 보며 약간의 팬심이랄까요? 그런게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방송에 출연하시게 되면서 많은 일이 있으셨을텐데, 혹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실까요? 류한수: 전반적인 이야기를 먼저 하자면 일단은 저도 계속 연구를 하는 입장에서, 혹여나 대중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면 안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공부를 하게 되면서 실력이 느는 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방송에 출연하는 입장에선, 카메라 앞에서도 능숙히 이야기를 풀어가야 합니다. 내가 정보를 가지고 있더라도, 계속 실수를 하거나 긴장을 한다면 정보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으니까요. 제가 상명대에서 세계사 교양과목을 2007년부터 강의해왔는데요, 대형강의다 보니까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게 익숙해졌어요. 그 덕분에 녹화 현장에서도 무리없이 강의를 할 수 있었습니다. PD님께서도 이 부분을 좋게 봐주셨는지, 이후에도 관련 주제가 있으면 종종 연락을 주십니다. 벌거벗은 세계사가 200회 방영에 가까워지고 있는데, 세보니 제가 10회 분량 정도 출연했네요. 방송 이야기를 하면 연예인을 빼놓을 수 없을텐데요. 벌거벗은 세계사 같은 경우, 연예인 패널로 슈퍼주니어의 규현, 혜성씨와 은지원씨가 출연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스몰토크라고 하죠? 그런 것들도 조금씩 나누곤 한데, 제 제자 중 한 명이 규현씨의 열성팬이었어요. 제가 벌거벗은 세계사에 출연하는걸 안 제자가 수업이 끝난 후 부탁을 하더라고요. 규현씨의 사인을 받고 싶다는 이야기어요. 정말 성실한 학생이었고, 또 제자의 부탁이기에 거절할 이유는 없어서 알겠다 했습니다. 그래서 녹화날 잠시 쉬는 시간에 규현씨과 이야기를 하면서 넌지시 부탁을 드렸죠. 그러더니 정말 흔쾌히 사인을 해주셨습니다. 팬의 바람인걸 아시고 굉장히 즐거워 하시더라고요. 당연히 사인을 받은 제자도 행복해했고요. 그런 일이 두 번 정도 있었는 데, 사실은 녹화 현장이 생각보다 민감한 곳이에요. 그 방송의 경우도 하루에 두 편의 녹화를 진행하는데 거의 10시간 가까이 촬영을 진행합니다. 우리도 10시간 가까이 일을 하면 지치고 피곤하잖아요? 그래서 사소한 것에도 예민할 수 있는데, 규현씨를 보면서 한 분야의 정상에 서기 위해선 항상 일관되고 건강한 마음가짐을 가져야하구나 다시금 느꼈습니다. 지금도 제자가 행복해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네요. Q: 어떻게 보면 카메라가 꺼진 현장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는 교훈적인 이야기 같습니다. 또 하나의 동기부여가 될 수 있고요. 지금까지의 방송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해오셨는데,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도 간략히 들을 수 있을까요? 류한수: 첫 번째로는 결단력과 용기를 가지고 임해야겠단 생각입니다. 일단 방송에 출연함으로써 제가 얻는 이익도 상당히 큽니다. 제 개인의 인지도나 학교의 인지도도 있고요, 또 방송을 준비하면서 주제에 맞는 연구를 하는데 그것이 학문적으로도 크게 도움이 됩니다. 물론 이익만큼 영향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어떤 행동이나 발언에 있어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죠. 혹여나 내 전문 분야가 아닌 곳까지 내가 영향력을 넓힌다면, 잘못된 정보를 전달할 수도 있고 특정 대상에 대한 왜곡된 인상을 심어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감당 가능한 분야, 나의 전문 분야를 인식하고 내 역량 이상의 요건의 제안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거절하는 용기도 필요하겠다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이 마음가짐으로 살아야겠다 다짐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개인적인 바램인데요, 제가 지금까지는 강연/설명 위주의 교양 프로그램에서 활동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대학 강의와 유사한 측면이 있는데요, 예전에 알쓸신잡, 비정상회담이란 프로그램을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특정 주제를 가지고 패널들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토의를 하는 프로그램이라 개인적으로 큰 관심이 있습니다. 특히 역사와 철학, 문학 등 인문학 전반에 걸쳐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와 얘기를 푼다면 큰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이런 포맷의 프로그램에서 섭외를 해주신다면, 저는 망설임 없이 출연하고 싶습니다. 물론 제 분야 내에서,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라면 말이죠. Q: 콘텐츠가 다양해지는 만큼, 언젠가 교수님의 희망 프로그램도 다시 대중 앞에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교수님의 삶, 가치관, 그리고 계획까지 모두 알아볼 수 있었는데요, 마지막으로 상명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 그리고 역사학자로서 같은 전공을 탐구하는 모든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류한수: 일단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견해임을 미리 말씀드릴게요. 전국에 4년제 대학이 100여개가 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대학 진학률도 상당히 높고요. 그 과정에서 대학의 역할이 학문에 대한 진취적인 탐구가 아닌, 일종의 직업학교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느낍니다. 물론 우리 삶에 있어 직업을 가지고, 더 좋은 직업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 역시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지식 주기는 점점 짧아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기술이 나타나고, 그 기술이 발전하면서 생활 양식이 크게 달라지고 있음을 여러분들도 느끼실거라 생각합니다. 세상은 계속 변화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배우고 있는 학문과 전공도 몇 십년 뒤에 어떤 영향력을 발휘할지 알 수 없습니다. 평균 수명 100세를 향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직업학교에만 머무른 대학은 다변화하는 사회에 걸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원래 목적인 ‘학문과 지성의 요람,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지혜의 샘’처럼, 인간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와 인격의 도야가 미래를 살아가는데 있어 필요한 마음가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 상명인 여러분들에게도, 상명대학교가 미래의 인생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장소가 되었으면 합니다. Q: 지금까지의 역사와 함께, 더 나은 미래를 바라보는 류한수 교수님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2024학년도 5월 서울캠퍼스 상명피플 인터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류한수: 감사합니다. 역사는 쓰여진 기록 뿐만이 아닌, 쓰여질 기록의 이정표다. 끊임없는 연구와 지식의 대중화를 위해 힘쓰는 류한수 교수의 역사학 이야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풀어나갈지, 또 어떤 모습으로 상명인의 이름을 드높일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을 향해 도전하는 상명인의 모습은 더 나은 미래를 그리기에 충분할 것이다. 기획: 대외협력처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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